한국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일본 측이 내놓을 조치는 과거 담화 계승 등 형식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그동안 한국 외교부는 ‘성의 있는 호응 조치’의 핵심 내용으로 피고 기업의 기부나 사과 등을 요구했지만, 이는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버티기’로 일관한 일본 정부의 ‘완승’이라는 비판마저 나올 공산이 크다.
5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한 후 일본 정부가 제시할 호응 조치는 △과거 담화 계승 △한일 교류사업 민간 기금 조성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해제 등 세 가지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모두 강제동원 배상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먼저 과거 담화 계승은 “새로운 사과는 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종전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1995년 무라야마 담화나 1998년 한일 공동선언 등에 담긴 사과 표현을 계승한다고 밝히는 데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한일 공동선언 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요미우리는 이날 “과거 담화를 계승하는 것은 ‘청구권협정에서 문제가 해결됐다’는 견해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한국 유학생 장학금이나 청소년 교류 등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하고, 여기에 피고 기업을 포함한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배상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피고 기업은 ‘자발적 출연’을 할 수 없으므로 아예 목적이 다른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반도체 수출규제 해제는 한국 정부가 먼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는 것을 전제로 한일 간 조율이 진행 중이라고 요미우리가 전했다. 아베 신조(지난해 7월 사망) 내각 시절인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반도체 소재 3개의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같은 해 8월에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당시 '안보상의 대응'이라고 주장했던 일본 정부는 지금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아베 총리의 회고록에는 그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보복 성격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해당 아이디어를 낸 경제산업성 관료를 칭찬하기까지 하는 내용이 담겼다. 외교 문제를 경제로 보복했다고 자인한 셈인데, 이런 비상식적 조치의 해제를 마치 ‘선물’처럼 언급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선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조차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해법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한국 내에선 ‘일방적 타협’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사히는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한국 내에서는 협의를 지속하자고 주장하는 의견이 여전히 나온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