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에선 특이한 한국 로맨스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1주일째 1위(2월 27일~3월 5일)다. 바로 '일타 스캔들'이다. 이 드라마에서 남행선(전도연)은 친부모 대신 키우는 조카의 입시 학원 수학 일타 강사(1등 스타 강사)인 최치열(정경호)을 알게 된 뒤 사랑에 푹 빠진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다 큰 여주인공의 판타지 대상은 '수학의 신'이다. '사내 맞선'(2022)과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 등 그간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백마 탄 왕자'는 주로 재벌 2세였지만 이 공식은 최근 달라지는 양상이다. 김재욱과 아이돌그룹 에프엑스 출신 정수정의 로맨스를 그린 '크레이지 러브'(2022)에서도 수학 일타 강사가 남자 주인공이다. 일타 강사가 요즘 로맨스 드라마에서 새로운 '왕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타 강사는 K콘텐츠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MBC)에선 아예 '일타강사'란 문패를 단 예능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 있고, 온라인에선 일타 강사 부캐(부캐릭터) 놀이가 한창이다. 유튜버 문상훈은 한국지리 일타 강사인 '문쌤' 캐릭터로 활약하며 110만여 명을 구독자로 끌어모았다. 일타 강사의 위상은 한류 스타들이 즐비한 K콘텐츠 시장에서도 부쩍 높아졌다. 가수 겸 배우 비는 지난달 유튜브 채널 '시즌 비 시즌'에서 "저도 한 번 정말 뵙고 싶었던 분"이라며 이지영 사회탐구 일타 강사를 초대해 직접 요리를 해줬다. 토크쇼에서 조명받는 이는 연예인이 아닌 일타 강사다. 일타 강사가 K콘텐츠 시장에서 새 아이돌로 떠올랐다는 방증이다.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파스타' 이선균, '오 나의 귀신님' 조정석)나 '진짜 사나이' 열풍으로 인한 군인('사랑의 불시착' 현빈, '태양의 후예' 송중기)에서 일타 강사로 바뀐 배경이다.
이런 흐름은 일타 강사가 세대를 초월해 교육 분야를 넘어 일상에서 아이돌처럼 소비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공부한 청년 세대들에게 일타 강사는 처음 접한 자수성가의 상징"이라며 "조직이 아닌 개인이 성공을 이뤘다는 측면에서 더 열광받고 자식 교육으로 부모 세대에게도 일타 강사는 친숙한 존재가 돼 대중문화에까지 소환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유일한 계층 이동 사다리로 믿었던 학벌조차 자본으로 기득권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입시는 계층 상승의 마지막 관문"이라며 "소위 명문대 입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타 강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대중문화로 반영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타 스캔들'에서 '1조 원의 사나이'라 불리는 최치열에겐 수강생들이 집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학원가를 호령하는 '돼지엄마'들도 그를 추앙한다. 이 드라마에서 일타 강사를 연기한 정경호는 최근 본보와 만나 "일타강사의 삶이 연예인과 똑같더라"며 "맘카페 등에서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사생팬까지 있는 걸 보고 '이 정도였어?'라고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헌식 카이스트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위원은 "공교육에서 선생님들은 입시에서 학생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일타 강사들은 대입에 결정적 도움을 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말 그대로 신적인 존재"라며 "MZ세대는 실용적 관점에서 결과를 내는 이들에게 환호하고 그렇게 시대적 스타가 된 일타 강사들이 로맨스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봤다.
대중문화에서 불고 있는 일타 강사 열풍은 공교육이 학교 폭력 근절에 실패하고 청년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이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현실에서 새로운 스승에 대한 갈망으로도 읽힌다. 소설 '수상한 식모들'로 등단한 박생강 드라마 평론가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의 위세까지 무너지면서 '진짜 스승'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다"며 "수십억 원대의 연봉으로 그 위상이 증명된 일타 강사가 자본주의 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