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워싱턴 펜타곤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한미 국방장관 연례회의)에서 마크 에스퍼 당시 미 국방장관이 한국 대표단을 향해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에스퍼 장관이 훗날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그는 심지어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에게 우리 서욱 국방부 장관 면전에서 사드(THAAD) 철수와 재배치까지 지시했다네요.
경북 성주에 배치한 방어무기 사드가 왜 이토록 미군 지휘부의 분노를 유발했을까요. 바로 열악한 기지 근무환경 때문이었습니다. 기지를 정상화하기 위한 필수 절차인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거치지 않아 물자 반입과 시설 공사가 여의치 않았던 겁니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미국의 자존심이 구겨진 셈입니다.
‘아들, 딸들이 행복하지 않은 곳’으로 불리며 천덕꾸러기 신세이던 사드기지가 새 국면을 맞았습니다. 국방부는 지난달 24일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산49-1번지 ’17-공-A 지역’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2017년 4월 사드 장비가 일부 반입된 이후 5년 10개월여 만입니다. 통상 환경영향평가 초안이 공개되면 1, 2개월 내로 최종평가가 끝납니다. 따라서 늦어도 올해 상반기 안에는 사드기지의 정식 배치가 완료될 전망입니다.
공개된 환경영향평가 초안 요약본에 따르면, 그간 사드기지 정식 배치를 반대해온 주민과 시민단체의 핵심 논거인 ‘전자파’ 문제가 사실상 해결됐습니다. 전자파의 인체 보호기준은 10W/㎡인데 현황조사 결과 사드기지 인근 지역인 월명리와 노곡리, 율곡동 등에서는 수치가 최고 0.01887W/㎡로 측정됐습니다. 기준치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죠. 국방부 관계자는 “평가 결과 전자파를 포함한 모든 평가항목이 기준치 이하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사드기지 정상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기지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되지 않으면 기지 안에 새로 건물을 짓거나 시설을 갖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방부는 관련 질의에 대해 “한미 장병들은 임시 숙영시설을 사용 중이나, 앞으로 임무수행 및 생활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임시 숙영시설’은 다름 아닌 컨테이너 박스입니다. 그간 사드기지에 복무하던 한미 장병들은 임시로 마련한 컨테이너에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에스퍼 장관이 한국 측에 기지 상황에 대해 강한 톤으로 불만을 쏟아낼 법도 합니다.
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따르면 사드기지에는 해당 장소가 골프장이었던 시절 이미 건축됐던 클럽하우스와 관리동에 더해 장비보관창고, 위병소, 정수시설, 하수처리시설 등이 신축될 예정입니다. 국방부는 “다른 미군기지와 동일하게 경계용 울타리, 출입통제시설, 하수·오수처리시설 등 임무수행과 장병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반 여건을 갖추는 데 6년이 걸린 셈입니다.
이처럼 장병들이 생활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사드기지는 이미 정상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7년 4월 레이더와 사격통제시스템, 발전기, 발사대를 반입하면서 언제든 적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사드의 ‘눈’ 역할을 하는 레이더와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대를 배치한 덕분입니다. 국방부는 "현재 임시배치 중인 주한미군 사드체계가 작전적으로는 정상운용 중"이라며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마친 뒤에 임시배치가 정식배치로 바뀐다고 해서 군사적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지 정상화 이후에는 사드 추가 배치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지의 작전능력을 보강하기 위해서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사드 1포대를 수도권 방어용으로 추가 배치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습니다. 그래야 ‘한국형 3축 체계’인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과 사드를 온전히 연동해 대북 억지 태세를 완비할 수 있다는 주문도 적지 않습니다.
그간 성주 사드기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 같은 정부 차원의 문제가 전부는 아닙니다. 최근 들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그간 장비와 유류 등의 수송이 막히면서 근무 장병들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가 모두 끝나면 이러한 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지난해 10월부터는 사드와 패트리엇 체계 간 상호운용성을 향상하는 성능개선 사업도 이뤄졌습니다. 북한 미사일 위협에 맞서 국민을 보호하고 핵심자산의 방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 축입니다.
주한미군 측도 기지 정상화에 반색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은 3일 한국일보에 보내온 입장문에서 "주한미군과 한국 국방부는 (기지 정상화를 통해) 사드를 운용하는 한미 연합부대의 보건, 안전, 복지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긴밀한 조정과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아직도 지역 주민들은 사드기지 정상화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2일 국방부가 사드기지 주변 성주군 초전면과 김천시 농소면 지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려던 사드기지 일반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대한 주민설명회는 사드 반대 단체 회원과 주민들의 저지로 무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