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의 에너지 생산과 관련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사상 최다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 감축에 각국이 팔을 걷고 나섰다지만, 아직 인류의 노력은 기후위기 해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가운데, 극심한 가뭄과 불볕더위로 대형 산불도 잦아지면서 북반구 숲이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기후위기의 경고음이 잦아들긴커녕 갈수록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일(현지시간) 발표한 '2022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보고서에서 "2022년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68억 톤으로, 전년보다 0.9%(3억2,100만 톤)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6%를 넘었던 2021년에 비해 증가세가 둔화한 건 사실이지만, 마냥 손뼉을 칠 일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각국에서 시행된 각종 기후 정책의 성과로 보기엔 무리라는 얘기다.
프랑스의 에너지 연구기관 케이로스의 앙투안 할프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의 감소는 '두 가지 사건' 때문"이라고 짚었다. 먼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컸다. 러시아의 석유·천연가스 수출에 차질이 생기면서 유럽의 천연가스 관련 배출량이 13.5%나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인구 대국'인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공장이 멈춰 선 탓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중국은 지난해 '전년 대비 0.2% 감소'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한마디로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 하락은 '극히 이례적인 상황'에서 초래된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지속불가능한 성장 궤도에 남아 있다"는 게 IEA의 결론이다. 실제 심각한 기후변화 상황을 고려하면 배출량을 매년 줄여야만 하는데, 기후 목표 달성까진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으려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최소 45%(2010년 대비) 감축해야 한다고 본다. 10년 동안 매년 7%씩 줄여야 하는 셈이다. 대니얼 A. 래쇼프 세계자원연구소장도 "증가율이 우려보다는 적으나 세계에 필요한 '급속한 감소'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미 진행된 지구온난화가 탄소 배출량 증가를 거드는 '악순환'도 확인됐다. 보고서는 가뭄으로 수력발전용 물이 줄거나, 극한 날씨가 냉난방 수요를 늘리는 현상을 꼬집었다. 또 '탄소 저장고'로 방어막 역할을 하던 북방 침엽수림이 기후변화를 심화시키는 '악당'으로 돌변할 낌새도 있다. 아한대 지역에 속하며 지구 육지 전체의 11%를 차지하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등의 숲 지대에서 대규모 화재가 잇따르고 있는 탓이다.
미국 CNN방송은 캘리포니아 대학(UC 어바인)의 최근 연구에서 "2000년 이후 북방 침엽수림에 여름철 산불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산불은 숲의 토양층이 잡아 뒀던 탄소를 대기 중으로 다량 배출하는 계기가 된다. 산불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당초 전체의 10% 수준이었으나, 2021년 23%로 치솟았다. 비극적인 건 이런 대형 산불도 결국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는 점이다. 여름이 점점 덥고 건조해지면서 불이 나기 쉬워지고, 한번 난 산불은 쉽게 꺼지지도 않는다. CNN은 북반구 숲을 기후위기의 '시한 폭탄'이라고 표현했다.
미약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들여다보면, 재생 에너지의 성장이 석탄·석유와 천연가스 사용 증가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상당 부분 상쇄한 것으로 조사됐다. 파티흐 비롤 IEA 사무총장은 "재생 에너지가 없었다면 배출량 증가 폭은 3배 이상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지난해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인 2.3%보다 낮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영국 가디언은 "최소한 정체기에 도달하고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