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을 놓고 한일 양국 정부의 막판 협의가 한창이다. 이르면 내주 양국이 합의안을 발표하고, 이달 안에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될 정도다.
정부는 우리 기업이 먼저 배상한 뒤에 일본 측이 나중에 참여하는 '대위변제'를 해법으로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나카가와 미유키 일본 호쿠리쿠 연락회 사무국장은 "한국 정부의 해법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것"이라고 단언했다. 호쿠리쿠(北陸)는 일본 도야마·니가타·이시카와·후쿠이현 지역을 일컫는데, 그가 속한 연락회는 1990년대부터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근로정신대에 끌려간 한국인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을 지원해온 시민단체다.
한국을 찾은 나카가와 사무국장은 2일 저녁 본보와 만나 "일본의 사죄와 배상 없는 해법은 피해자들이 지난 30년간 해 온 싸움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또 일본 전범기업이 우리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배상금을 기부하거나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일본 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돈을 낼 경우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나카가와 사무국장을 비롯한 동료 활동가들은 후지코시의 소액주주이기도 하다. 주주 자격으로 매년 주주총회에 참석해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유족 27명은 2013년 2월 소송을 제기해 항소심까지 모두 승소했다. 사건은 현재 우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총회에서 "왜 법원 판결에 따르지 않는가", "국제기업으로서 (한국의 재단 기부 참여에) 먼저 나설 수는 없는가"라고 캐물었지만 회사 임원진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처음에는 질문을 하려고 하면 마이크를 꺼버리거나 중계를 중단해버렸다"면서 "최근 주주총회에서 연락회 회원들의 비중이 커지면서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고 미묘하게 바뀐 분위기를 전했다.
소송에서 연거푸 패하면서도 일본은 왜 배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요지부동일까. 나카가와 국장은 "한국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해 과거 문제를 풀려는 기업이 있어도 자민당 내 극우 성향이 정치인들의 압박 때문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줄어들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역사를 알고 있는 기업 임원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배상 참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나카가와 국장은 2018년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의 정신을 한일 양국 정부가 곱씹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물결은 국제사회에서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가장 큰 힘이 돼주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촛불이 모여 큰 불길을 만들 수 있다"며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를 얻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