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약한 이에게 가혹했던 튀르키예 지진

입력
2023.03.09 04:30
25면

편집자주

초연결시대입니다. 글로벌 분업, 기후변화 대응, 빈곤퇴치 등에서 국적을 넘어선 세계시민의 연대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행성에 공존하는 대륙과 바다 건너편 시민들의 민심을 전합니다.

지난달 튀르키예를 강타한 지진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배경에는 지진 지역의 사회·기술적 취약성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 지역보다 소득 수준이 낮고 사회기반시설과 인적자본 축적이 부족해 피해 규모를 더욱 키웠다는 분석이다. 결국 경제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지진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된 셈이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8일 최근 튀르키예 지진 발생지역의 특수성 및 피해와의 상관관계에 대해 재해 전후 실시된 각종 기관의 자료를 분석해 발표했다.

규모 7.8이 넘는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곳은 튀르키예 동남부에 집중돼 있다. 가지안테프(Gaziantep)와 카흐라만마라스(Kahramanmaras) 등 10개 지역에서 4만 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했고, 튀르키예 정부는 이들 지역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진 피해 잔해가 서서히 치워지면서 재난의 규모와 원인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피해가 커진 데는 역대급 강력한 지진 에너지 못지않게 느슨한 내진 설계와 기준 이하 건축 관행, 더딘 구조활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흔들림에 극도로 취약한 벽돌로 만들어진 저층 건물에 살았고, 1999년 지진 이후 도입된 새로운 건축 규정에 따른 보강이 이뤄진 곳은 드물었다. 지진으로 손상된 건물 중 최대 7만5,000채가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함께 보고서는 지진이 발생한 지역의 특수한 경제적·사회적 취약성들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먼저 지진발생 지역의 소득 수준이 나머지 튀르키예 지역에 비해 크게 낮았다. 전통적으로 튀르키예는 유럽에 가까운 서북부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동남부는 경제 발전이 더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갤럽에 따르면 지진 발생 지역 주민의 34%는 튀르키예 소득 하위 20% 그룹에 속했다. 나머지 튀르키예 주민(16%)의 2배가 넘는 비율이 빈곤층에 해당하는 것이다. 소득 상위 20% 그룹에 해당하는 주민 비율은 13%에 그쳤다. 같은 조사에서 이 지역 주민의 절반 가까이(44%)가 식량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로이드재단(Lloyd's Register Foundation)이 2021년 실시한 세계위험조사(World Risk Poll)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관심사'를 묻는 질문에서 이 지역 주민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항목은 범죄(20%), 건강(10%), 기본 생활비(10%)였으며, 지진 위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른 사안에 비해 지진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던 것이다.

이 지역 주민들의 인적자원 네트워크 부족도 피해를 키우는 중요 요인으로 분석됐다.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줄 만한 사람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68%로 튀르키예 나머지 지역(86%)보다 낮았다. 즉 세 명 중 한 명은 어려울 때 지원받을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재해가 발생하기 전부터 주거지역이 재난에 취약하다고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세계위험조사에서 지진 발생 지역 주민 가운데 '재난에 대처할 준비가 잘 되었다'는 항목에 동의한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이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중동 지역의 중앙값(47%)보다 크게 낮을 뿐 아니라 지진 지역을 제외한 튀르키예 지역(36%)에 비해서도 낮다.

송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