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97세대가 정치 교체하려면... 연합, 대립, 브리지가 돼라

입력
2023.03.04 11:00
13면

편집자주

자기 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3월 8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뉴스거리가 지속됐다. 국민의힘 대표 후보는 4명이다. 김기현, 안철수, 천하람, 황교안 후보다. 4명의 후보는 국민의힘 내부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반영하고 있다.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반영하면서도 역동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이다.

국민의힘에서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은 이준석과 천하람이다. 2021년 대표가 될 때, 이준석은 개인이었다. 2023년 천하람은 ‘천하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으로 짝을 이루고 있다.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의힘 세대교체 에너지가 2023년에도 진일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럼, 민주당에서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을 것이다.

지난해 8ㆍ28 민주당 전당대회는 이재명 후보와 함께 97세대 정치인들 4명이 대표 후보로 나왔다. 97세대는 90년대 학번, 70년대생을 의미한다. 당시 대표 후보로 나온 97세대는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의원이었다. 최종 결선에는 이재명 후보와 함께 강훈식, 박용진 의원이 올라갔다. 최종 득표율은 이재명 후보 78%, 박용진 후보 22%를 받았다. 선거는 ‘구도’가 중요하다. 좋아서 찍거나, 싫어서 찍는 게 일반적이다. ‘구도 효과’를 고려할 때, 박용진 후보의 22%는 매우 초라한 득표였다. 세대교체 바람은 불지 않았다.


97세대의 3가지 특징, 소비 자본주의 세대ㆍ세계관의 후배ㆍ낀 세대

민주당의 97세대 정치인들은 세대교체 주역이 될 수 있을까? 민주당의 97세대는 1970년 김대중과 김영삼의 40대 기수론과 2000년대 초중반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의 정치권 진입 이후, 세 번째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수 있을까?

97세대의 정치적 가능성을 살펴보기에 앞서, 97세대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97세대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최초의 소비 자본주의 세대다. 둘째, ‘86세대가 만든 교재’로 공부했던 세대다. 셋째, ‘낀 세대’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97세대는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최초의 소비 자본주의 세대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1,000달러는 1977년, 5,000달러는 1989년, 1만 달러는 1995년에 달성한다. 2만 달러는 2010년, 3만 달러는 2019년에 달성한다.

경제학에서 ‘중진국 함정’ 개념은 보통 6,000달러~1만 달러 사이에 갇혀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1인당 GDP 1만 달러를 돌파한 경우, 비로소 ‘자본주의에 안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1인당 GDP 1만 달러를 돌파한 시점은 1995년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출현한 시점이 1992년이다.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한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시작된 시점은 1995년으로 볼 수 있다. 1인당 GDP 1만 달러를 달성한 시점이다. 그 이전 과정은 ‘자본주의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기다. 97세대는 바로 이 시기에 20대를 보냈던 사람들이다. 97세대는 ‘소비 자본주의’의 첫 번째 세대다.

둘째, 97세대는 무엇보다 ‘86세대가 만든 교재로’ 공부한 세대다. 90년대 학생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한국의 사회과학 출판물 중에 역대급 베스트셀러로 볼 수 있는 책들은 조성오의 ‘철학 에세이’,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이 포함된다. 그 밖에도 ‘마르크스의 자본’, ‘공산당 선언’ 등이 포함된다. 이 책들이 역대급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87년 6월 항쟁 이후, 학생운동의 전성기를 맞으면서 ‘학생운동 교재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97세대는 86세대가 만든 교재로 공부한 세대다. 97세대는 86세대의 생물학적 후배 이전에 ‘세계관의 후배들’이다. 민주당 97세대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86세대와 다르게 활동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기에는 ‘86세대의 아류’로 보였던 이유다. 민주당 97세대 정치인들은 아직 86세대와 구분되는 독자적 세계관, 독자적 콘텐츠를 보여주지 못했다.

셋째, 97세대는 ‘낀 세대’다. 97세대는 86세대도 아니고, 2030세대도 아니다. 86세대가 보기에는 ‘막내들’로 보인다. 2030세대가 보기에는 ‘삼촌’으로 보인다. 어디에서도 대장 노릇을 할 수 없다. 97세대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쉽지 않은 이유다. 만일 97세대만으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낀 세대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낀 세대임을 겸허하게 인정한다면, 다른 세대와 연합하는 노선을 취해야 한다.

97세대의 3가지 노선 – 86세대 연합노선ㆍ대결노선ㆍ2030세대의 브리지 노선

97세대의 3가지 특징을 고려한다면, 97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노선 역시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86세대와 연합하는’ 노선이다. 정치는 네트워크 산업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선후배를 챙겨주고, 유유상종과 동종교배가 강하게 작동하는 산업이다. ‘안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진입 확률이 달라진다. 이 노선은 86세대의 예쁨을 받는 ‘막냇동생’ 노선이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현재 민주당 97세대 활동가의 압도적 다수가 취하고 있는 노선이다. 현실에 적응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둘째, ‘86세대와 대결하는’ 노선이다. 오른쪽에서 저항하든, 왼쪽에서 저항하든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튼 86세대 주류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다. 이 노선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언론 노출에서 용이하다. 남들은 안 하는 선택이기에 가시성에서 돋보인다. 단점은 세력을 얻기 어렵다. 독야청청(獨也靑靑)한 ‘미스터 쓴소리’로 귀결될 수 있다.

셋째, ‘2030세대의 브리지(가교)가 되는’ 노선이다. 세대교체의 가교 노선이다. 현재 민주당을 지배하는 주류 세력은 86세력이다. 이들의 지지층은 86세대와 97세대다. 연령으로는 40대 중반~50대 후반에 해당한다. 2030세대의 브리지가 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편이 되는 것이다. 기업으로 비유하면, 86세대와 연합하는 노선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선택이다. 2030세대의 브리지가 되려는 노선은 성공 확률이 불투명한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민주당 97세대는 세대교체 주역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민주당 97세대 중에서 2030세대의 브리지 노선을 헌신적으로 실천하면서,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 당장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 정치사에서 ‘다음 세대의 브리지’가 되어 성공한 경우가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노무현 돌풍’이다. 당시 노풍(盧風)은 현재까지를 통틀어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돌풍에 해당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은 1946년생이다. 대통령 당선 당시 56세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은 1980년대 기간 내내 그 누구보다 ‘80년대스러운’ 삶을 살았다. 본인 자신은 대학을 나온 적이 없었고, 학생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86세대보다 더욱 86세대스러운 삶을 살았다.


2002년 노무현 돌풍 - ‘다음 세대 브리지’가 되어 정치적 리더가 된 경우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30대였던 86세대와 당시 20대였던 97세대는 노짱(노무현 전 대통령 애칭)을 지지했다. 당시 대선후보 노무현은 5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2030세대를 대표하는’ 정치를 했다. 다시 말해, ‘다음 세대 브리지 역할’을 통해 바람을 일으키고,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결국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

민주당 97세대는 세대교체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 97세대 중에 ‘2030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등장할 경우, 세대교체 주역이 될 것이다. 물론, 그 기회는 97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86세대에 속하는 사람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다.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콘텐츠, 새로운 정책노선으로 무장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정치를 바꿔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이미 가슴 한편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