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도, 잡스도, 매카트니도 빠져 버린 그것, '지위 게임'

입력
2023.03.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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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자리에 연연해야 하나.’

당에 방탄 정당이라는 오명을 안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159명이 스러진 이태원 참사에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자녀가 학교폭력 가해를 했음에도 국가수사본부장 자리를 탐한 정순신 변호사. 도대체 무엇일까. 주변의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염치도 내팽개친 채 꿀단지처럼 끌어안고 있는 '지위'의 단맛은.

영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에 기고하는 저자는 단언한다. “인간은 보다 높은 지위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종교적 광신, 테러와 전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부상, 극단적 이념 대결의 배경에 ‘지위를 향한 갈망’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반강제적’으로 참여하는 이 경쟁을 저자는 ‘지위 게임’이라고 명명한다. “인간은 집단 위에서 위로 올라서면 기쁨을 느끼고, 추락하면 고통에 휩싸인다. 지위 게임은 인간의 본성이다."

지위는 타인이 우리를 추종하고, 존경하고, 칭찬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 지위를 둘러싼 게임은 너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온라인 게시판에서, 심지어 이웃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해 서열을 정한다. 한 번의 대화, 잠시 스친 눈빛만으로도 지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이 게임에 익숙하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부유한 옷’과 ‘가난한 옷’을 입은 사람의 사진을 보여줬다. 지위를 판단하는 데 1초도 안 걸렸다.

높은 지위를 향한 열망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수렵 채집 시절부터 더 높은 지위를 확보해야 권력을 누렸고, 좋은 음식을 먹었으며, 매력적인 이성과 짝을 지었다. 따라서 뇌는 우리가 높은 지위를 얻도록 채찍질한다. 과거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만 ‘짐승 이빨 목걸이’를 걸었다. 지금 모두는 '현대판 짐승 이빨 목걸이’를 건다. 좋은 차, 집, 직위, 평판, 매끈한 피부, 값비싼 골프채에 환호하는 이유? 지위를 보여주는 수단이자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지위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은 양면적. 대중들은 보다 나은 건축가, 기술자, 지도자, 부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눈부신 결과물을 낳았으며, 문명을 발전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펜이 달린 태블릿을 만들겠다’고 자랑한 마이크로소프트를 꺾기 위해 ‘손으로 사용하는 아이폰'을 만들었다. 인류 생활 수준이 한 세기 만에 월등히 좋아졌다는 사실도 틀림없다. 영아 사망률, 기근, 전염병 위험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지위 게임의 틈바구니에서 자기 착취, 극단적 범죄, 혐오와 전쟁이 태어난다. 직장 내에서는 지위가 낮을수록 우울증이 높고, 정신적으로 위축되며, 자기를 비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위 상승이 좌절된 이들 일부는 ‘자아의 절멸’ 상태에 빠져 연쇄 살인마, 테러리스트라는 괴물로 변모했다. 히틀러를 향한 독일 국민의 광신적 환호, 오사마 빈 라덴의 9ㆍ11테러 배경에도 ‘지위 욕구’가 작동했다. 권력자들은 또 기억해야 한다. 노력에 따른 정당한 지위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게임 참가자들은 시스템을 응징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조국 전 법무장관을 향한 분노가 그 사례다.

더구나 지위를 향한 욕망은 밑 빠진 독이다. 비틀스의 작곡가 폴 매카트니. 엄청난 팬덤, 천재라는 칭호, 무한한 부를 누렸지만 음반에 ‘작곡, 존 레넌-폴 매카트니’라고 쓰인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기 이름을 앞세우기 위해 존 레넌 측과 싸우다 체면을 구긴다. “이런 결함은 인간의 본성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은 욕구가 진정되는 지점은 없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지위를 갈망한다. 동시에 그 게임에 버거워한다. ‘완벽주의’는 시장 경제가 급성장한 1989~2016년에 생겼다. 이 시스템은 ‘지위 획득은 개인의 능력에 달렸고, 실패하면 개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퍼트렸다. 게임의 법칙이 가진 자에 유리하게 짜였고, 양극화는 갈수록 벌어지는 악조건은 개선되지 않은 채, “결국엔 누구나 선택해야 한다. 방에 틀어박힌 히키코모리가 될 것인가, 게임에 뛰어들 것인가.”

‘외면한다고 이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견해. 저자의 설득력 있는 주장에 서글퍼질 지경이지만, 지위라는 욕망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생각을 가다듬을 수는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과정이다.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 게임에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러니 게임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숨이라도 쉴 수 있지 않겠는가.

정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