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아들을 잃은 유족은 2일 CBS 라디오 ‘김현정 뉴스쇼' 인터뷰에서 “도현이가 떠났다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급발진 사고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유족은 "최근 경찰로부터 사고 원인 조사 결과 차량 결함은 없었다는 취지의 감정결과를 전해 들었다"며 억울함도 호소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 등에 공개된 지난해 12월 발생 사고 영상에 따르면, 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차량은 강원 홍제동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다 공중으로 치솟은 뒤 배수로로 추락했다. 추락 직전 운전자인 할머니가 동승한 손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도 담겼다. 결국 이 사고로 손자는 목숨을 잃었고, 큰 부상을 입은 할머니는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열두 살 도현이 아빠’라고 밝힌 이상훈씨는 “손자를 죽이려고 운전한 할머니가 어디 있겠냐”며 “사고 영상을 수십 번 보면서 도현이가 왜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도현이와 왜 이렇게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규명하고 싶다”고 성토했다.
또 “(운전자가) 급발진 사고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찾아다녔다”며 “그러면서 든 생각이 내가 왜 이 짓을 해야 되는지, 경찰은 뭐 하는 건지, 왜 비전문가인 유족이 입증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로부터 차량에는 결함이 없는 쪽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결과가 나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급발진 의심 사고 신고 후, 제조사로부터도 어떤 연락이나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국회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글은 6일 만인 지난달 28일 5만 명의 동의를 받아 소관위원회인 정무위원회 및 관련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경찰 관계자는 본보와 통화에서 “조만간 할머니를 소환 조사하고, 유족에게 차량 결함 여부 등 사고 원인 감정 결과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조사 소환 조사 여부에 대해선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런 비극은 도현이 가족만의 일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급발진 현상을 신고한 건수는 196건인데, 전문가들은 실제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같은 방송 인터뷰에서 “급발진연구회·교통사고 전문변호사 등에 도움을 요청해 오는 비공식 사례를 보면 더 많을 것”이라며 “연간 400건, 하루 1건 이상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급발진 신고 건수가 적은 이유에 대해선 “한국 운전자들은 한국에선 법적으로 (급발진을 인정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접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급발진 사고로 인정된 경우는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없다. 김 교수는 “운전자가 자동차 결함을 찾아야 되는 구조기 때문에 제조사 입장에선 누워만 있어도 (소비자가) 알아서 져주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같은 경우는 제조업체가 결함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고, 입증을 못 하면 운전자와 합의하도록 하기 때문에 제작사가 열심히 만든다”고도 덧붙였다.
운전자들이 ‘급발진 대처법’을 스스로 찾아 공부하고 대비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운전자의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 작동 모습을 실시간으로 영상으로 기록하는 ‘페달 블랙박스’까지 출시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일반적인 영상 블랙박스는 간접적이지만, 발을 직접 찍어서 확인할 경우는 운전자가 내가 실수 안 했다고 입증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