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로 표출된 '비이재명계의 난'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비명계와 당 지도부의 중간 지대에 있는 당내 세력들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다. "총선 앞 분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은 막아야 한다"는 현실론도 아직은 통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당대표 사퇴 내지 불체포특권 포기를 요구하는 비명계와, 이를 일축하는 당 지도부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내홍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초재선 그룹 일각에서 이런 움직임이 감지된다. 초재선 그룹은 친문재인계로 분류되지만, 이 대표 당선 이후 계파색을 드러내지 않고 비교적 중립을 지켜왔다. 이 그룹의 한 재선 의원은 1일 본보 통화에서 "한동안 지역구 관리에 집중했는데, 이번 주부터는 여의도에 머물며 지도부와 비명계 사이에서 적극 중재 역할을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체포동의안 표결을 계기로 의원들 간의 골이 살벌할 정도로 깊이 파였는데,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이런 균열을 봉합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주축이 된 운동권 출신 의원 모임 민평련도 지난달 28일 모여 "현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당내 갈등을 키우지 않도록 역할을 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민평련 대표인 홍익표 의원은 이런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페이스북에 "당내 의원들 간의, 의원들과 당원 및 지지자들 간의 신뢰 위기가 신뢰 붕괴로 가서 더 큰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할 때"라며 "우리의 갈등과 분열은 상대가 우리를 더 흔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썼다.
강훈식, 기동민 의원 등 재선 그룹이 이끌고 있는 '더좋은미래' 역시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 사태를 계기로 이 대표 체제를 더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결론도 없이 계파 갈등만 길어지는 게 '이재명 사법리스크'보다 악재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한 재선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려면 윤석열 정권 심판론 구도로 치러야 하는데, 분열하면 그런 구도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립지대 의원들의 목소리는 친이재명계나 당 지도부의 '이재명 옹위론'과는 결이 다르다. 당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지면 이들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통한 '간판 교체'를 요구하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단 이 대표 체제 안정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중도층 민심 등 여론 흐름에 따라 이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비명계와 손잡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계파색이 옅은 수도권 중진 의원은 "이 대표를 무조건 감싸자는 것이 아니라 각을 세우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 대표에 대한 민심 이반이 뚜렷해지면 그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정공법인데, 민심이 아닌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공세 계기로 삼으려 했던 것이 '비명계 난'의 한계였다"고 짚었다.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 사태 사흘째를 맞으면서 공개적 의견 표출은 잦아들었지만 친명계와 비명계 내홍은 수면 아래선 여전히 내연하는 중이다.
친명계 김남국 의원은 MBC라디오에서 "당원이 선출한 대표인데 특정 계파가 모여 내려오라고 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정치"라고 비명계를 비판했다. 안민석 의원도 CBS라디오에 나와 "사전에 조직적인 모의가 없었다면 이탈표가 최대 10표가 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럴 바엔) 당대표 사퇴 여부를 전당원 투표로 묻자"고 했다.
반면 비명계는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 '이 대표 퇴진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내홍이 재연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