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괴물' 되지 않으려면... 학대예방 '부모교육' 필요

입력
2023.03.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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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키즈, 마음 재난 보고서 ③-2] 
누구나 부모가 되지만, 아무나 부모가 될 수 없다


편집자주

“아이들은 모두 자란다. 한 사람만 빼고.” 소설 ‘피터팬’ 첫 문장입니다. 어쩌면 한국엔 여느 세대처럼 제때 자라지 못한 ‘피터팬 세대’ 가 나올 지 모릅니다. 긴 거리두기, 비대면수업 탓에 정서·사회 발달이 더뎌진 ‘코로나 키즈’ 말입니다. 마스크와 스마트폰에 갇혀, 아이들은 ‘제대로 클 기회’를 놓쳤습니다. 방치하면 소중한 미래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그 회복에 필요한 어른들의 노력을 함께 짚어 봅니다.



미안해요. 소풍만 보내 주세요.
(이서현 양이 자신을 때리던 계모에게 했던 말)

2013년 10월 24일. 이서현(당시 8세) 양이 집 안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은 서현이가 아쿠아리움으로 소풍을 간다며 잔뜩 기대했던 날. 결국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소풍을 갔다.

당시 계모는 "딸이 목욕탕에 빠져 숨졌다"고 거짓 신고를 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반복 폭행으로 갈비뼈 16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사망한 것이 확인됐다. 계모는 징역 18년, 방임한 친부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다시 곱씹어보는 '이서현 보고서'

수사·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구체적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서현이는 사망 2년 전부터 계모의 학대를 받아 온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 1년 전에도 대퇴부 골절, 손목·발목 2도 화상 등 학대 징후가 계속 발견됐지만, 아이의 죽음을 결국 막지 못했다.

국회의원, 교수,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이듬해 '이서현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에서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분석한 첫 보고서였다. 당시 보고서 결론 중 하나는 '부모 교육 의무화'였다. 아동학대를 막으려면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아이는 맞으면서 크는 것이라는 그릇된 양육관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로 서현이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부모교육 의무화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관련 법안도 여러 차례 발의됐고, 이후에도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됐지만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릇된 양육관 고쳐 학대 막는 게 부모교육



애가 할머니 밑에서 자라 버릇이 없어, 엄마(계모)가 때릴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집도 다 그렇게 해요. 아동보호기관이나 다른 사람들이 가정사에 참견하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학대 징후 발견 뒤 이서현 친부가 보호기관에 했던 말)

'때려도 된다'거나 '우리집 일엔 참견 말라'는 아빠의 생각이 학대로 이어졌던 서현이 사건에서 보듯, 부모의 그릇된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동학대를 막는 열쇠라는 점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엔 이견이 없다. 무엇이 학대행위인지를 알아야, 자신의 행위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학대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물리적 폭력만이 학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소리를 지르는 게 정서 학대라는 인식이 아직도 떨어진다"며 "이때 부모는 '애가 나를 화나게 해서 소리 지른거지, 때리진 않았잖아'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교육을 받아야 자신의 행동이 학대인지 돌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작 문제 있는 부모는 오지도 않아


부모교육 받으러 오는 분들은 대부분의 훌륭한 부모님이에요. 교육 받을 필요 없는 사람은 열심히 받고, 정작 양육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부모님들은 교육 받지 않는 것이 문제죠.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부나 각종 민간기관에서 아동학대 관련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의무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정작 '교육이 꼭 필요한 보호자들'의 수강 비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혜원 서경대 아동학과 교수는 "양육에 관심있는 부모들만 온다는 게 문제"라며 "정말 오셨으면 하는 분들은 신청도 안 한다"고 현장 분위기를 소개했다.

그나마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아동학대 예방 부모교육은 코로나 이후 더 위축된 상태다. 복지부 산하 육아종합지원센터의 부모교육은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2019년 375건이었던 아동학대예방교육 시행횟수는 2020년(118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기본 부모교육 프로그램인 '클로버'는 더 심각했다. 횟수는 5,216건에서 1,831건으로 떨어졌고, 수강 인원은 2019년(9만2,072명)의 4분의 1 수준인 2만4,835명으로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부모교육 의무화 방안은 크게 세 가지 정도다. 이때까지 논의된 대표적인 방식은 △아동수당 부모교육 연계 △생애주기별 부모교육 △교과과정 내 부모교육 편입 등이다.

아동수당-부모교육 연계

최근 가장 활발히 논의된 안은 아동수당 지급과 부모교육을 연계하는 방안이다. 연 1회 온·오프라인 부모교육을 수강해야만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교육을 듣지 않으면 수당 지급을 미루는 식이다.

생애주기별 부모교육

생애주기별 부모교육은 10년 전 '이서현 보고서'에서 제시됐다. 혼인신고, 출생신고, 유치원·초등학교 입학 등 아동 성장의 특정 시점에 맞춰 주기적으로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공교육 교과과정 편입

부모교육을 하나의 교과목으로 만들어 중·고 교과과정 안에 편입시켜야한다는 목소리다. 미국의 경우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아동 발달'(Child Development) 과목이 있다. 양육 기술과 아동의 성장과정을 배우는데, "부모가 될 생각이 있는 학생들에겐 필수적"이라고 소개한다.


정부 "취지 공감하지만, 의무화는 무리"


국가에서 아동을 지원하는 대신, 부모도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부모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2014년 '이서현 보고서'에서 발췌)

정부는 의무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에서 시행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동수당은 (누구나 받아야 하는) 보편적 복지여서 제약조건을 두면 수급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며 "현재도 수당 신청 시 4분 정도 양육 정보가 담긴 영상을 시청하게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아동 양육에 대한 지원을 점점 늘리는 만큼, 부모도 그에 걸맞은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혜영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노원구지회장은 "수당을 준다면 관리감독 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본다"며 "극단적 사례지만 일부 청소년 부모들이 아기를 낳고 돈을 받다 수당이 끊기면 아이를 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부모교육이 학대 예방은 물론 아동의 긍정적 발달도 돕는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접근을 주문한다. 삼형제를 키우는 김지원(45·가명)씨는 과거 집에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본인이 성인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에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ADHD 판정을 받은 둘째 민규(12·가명)는 아동센터의 공공연한 문제아였다.

하지만 김씨가 부모교육에 참여하고, 민규도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엄마와 아들 모두 서서히 변했다. 김씨 가정을 지켜본 기아대책 행복한홈스쿨 센터장은 "어머니가 MBTI, 애니어그램 등 아이의 성격을 알아볼 수 있는 부모교육을 수강하셨고, 특히 작년부턴 감사일기를 쓰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많이 좋아지셨다"고 말했다. "요즘엔 센터에 전화해 하소연하는 일도 거의 없고, 민규도 '쟤가 ADHD라고?' 할 정도로 의젓해졌다"고 덧붙였다.


▶팬데믹 고립이 아동학대로 이어졌던 '성현이네 사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22816360001485?did=NS&dtype=2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