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은 정부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필연적인 딜레마도 같다. 민간 기업만큼은 수익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지만, 쌓이는 적자를 안이하게 놔두기만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긴축을 핑계로 득실만 따지며 생존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비싼 공공요금은 형용모순에 가깝다. 싼값에 공적 서비스를 누리는 것은 국민의 권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퇴양난의 단적 사례가 얼마 전 터진 ‘난방비 폭탄’이다. 전기요금도 마찬가지지만, 가스요금 인상은 완화보다 긴축을 선호하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 기조 개편 일환이었다. 누적 부채 축소를 통한 재정건전성 확보는 현 정부가 적극 표방하는 방향성이고, 명분은 예의 그 ‘경제적 합리성’이다. 공공요금 인상 억제로 물가를 누르려 했던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시도를 윤 정부가 불순한 정치적 포퓰리즘(대중영합)이라 매도한 것은 이런 인식에서였다. 그러던 터에 성난 민심을 달래려면 요금 동결뿐이라는, 전 정부와 같은 결론을 도출해야 할 머쓱한 처지에 놓이게 됐던 셈이다.
하지만 이 정도 일로 철저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윤 정부의 시장주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이 의미하는 것은 축소다. 씀씀이(예산)와 함께 덩치(조직ㆍ인력)도 ‘다이어트’ 대상이다. 자산과 복리 후생까지 줄이고, 기능마저 핵심만 남겨야 한다. 지난해 7월 착수한 계획 수립은 연말 일단락됐고, 각 기관의 이행만 남았다.
물론 어떤 측면은 긴축이 불가피하다. 윤 정부의 반면교사는 문 정부다. 팔수록 손해만 보는 기형적 가격 구조와 제멋대로 풀어진 방만경영 관행의 정상화는 어떤 정부에든 긴요한 과제다.
문제는 극단성이다. 이념 스펙트럼 반대편 끝으로 내달리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또 다른 과오를 낳을 뿐이다. ‘긴축=건전’ 등식이 성립하지 않듯 적자도 악마가 아니다. 건전해야 하는 것은 재정이 아니라 경제다. 재정은 ‘건전 경제’라는 목표의 달성에 활용되는 수단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축소 지향적이고 소극적인 재정 운용은 뒷감당 여력에 대한 고려 없이 빚을 자꾸 지는 무책임만큼이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십상이다.
관건은 본령이 지켜질 수 있느냐다. 효율성에 매몰될 경우 ‘저가(低價)’라는 공적 서비스의 정체성과 품질이 약화할 공산이 크다. 시장의 실패다.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1일 본보에 “공공 서비스를 민간에 의존하면 가격 상승은 필연적”이라며 “비대ㆍ방만이 초래한 공공기관 비효율성은 개혁을 통해 해소하되 정부 정책 기조 때문에 생긴 적자를 재정으로 충당해 기관이 역할을 충분히 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근본이 상실되지 않도록 유지하며 긴축과 완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경직된 긴축 일변도 방향성이 낳을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물가 불안이 대표적 부메랑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가 물가 관리에 전략적으로 활용 가능한 유일한 수단이 공공요금인 만큼, 국민 부담과 정책 목표를 감안해 인상 폭과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