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성현(9·가명)이는 오늘도 신경질을 낸다. 어김 없이 욕설까지 섞어가며.
오전 8시는 삼남매를 혼자 키우는 이소영(40·가명)씨 하루 중 가장 괴로운 시간이다. 성현이를 깨워 등교시켜야 하는데, 막내는 짜증만 부리며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하지만 그냥 자게 둘 수 없다. 지금처럼 결석하면 유급 처리가 될 거다. 성현이는 지난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서부터 학교를 밥먹듯 빠졌다. 매일 새벽 2시까지 게임하고, 아침엔 학교 가기 싫다며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는 게 일상이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소영씨는 마음을 굳게 먹고 막내를 흔들어 깨워본다. 그러자 아이는 날카롭게 소리를 내지르며 엄마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긴다.
작년 5월. 그 날 집안 풍경도 지금과 비슷했다. 아침 기상 실랑이 끝에 '그 사건'이 터졌다. 참고 참고 또 참았던 소영씨지만, 그 날만은 폭발하고 말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은 엄마는 지쳐 있었고, 온 집안에 울리는 성현이의 목소리는 고막을 찔러 왔다.(우울증 엄마는 날카로운 소리에 특히 민감하다는 호소를 해온 터)
결국 소영씨는 성현이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아들의 목을 힘주어 움켜잡았다. 두 손으로.
아동학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나쁜 짓이었지만, 이 상황을 소영씨 탓으로만 돌리기엔 상황이 가혹하다. 2020년 3월. 코로나 탓에 개학은 네 차례나 연기됐고, 조금만 버티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엄마와 아이는 기약없이 집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이는 집에서 힘들어 했고, 아이의 짜증을 고스란히 혼자 받아내던 엄마는 지쳐갔다. 누구의 도움도 받기 어려웠다. 이혼 후 애들 아빠는 한 달에 한 번 찾아만 올 뿐 양육에는 손을 놓았고, 친정어머니는 지적장애를 가진 소영씨 동생을 챙기느라 손주들 챙길 형편이 못 됐다.
그렇게 쌓인 엄마의 우울은 아이 몸에 손을 대는 것으로 터지고 말았다. 가장 평화로워야 했을 집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밀실이 돼 버렸다.
다행히 소영씨는 큰 일 나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성현이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학대 흔적을 본 의사가 소영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소영씨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했다. 경찰은 소영씨 학대를 아동보호사건(혐의는 인정되나 보호관찰·교육수강등으로 형사처벌을 대신)으로 송치했다. 가정법원은 작년 말 보호관찰 1년, 아동보호전문기관 교육 수강 1년의 처분을 내렸다.
성현이는 온순한 아이였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지적장애 3급이라 키우기 쉬운 아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코로나 전엔 폭력성을 보이지도 욕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 떼를 쓰는 일도 없었다. 엄마는 막내가 쾌활하게 "엄마 안녕"이라 외치면서 어린이집 통학 차량을 타던 '아름답던 등원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등원과 달리 등교는 아름답지 못했다. 성현이 행동이 변한 건 2021년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였다. 1학년 때 게임을 하면서 욕설이 시작됐고, 새벽까지 게임하는 날도 많아졌다. 2학년 때는 아예 밤낮을 바꿔 살았다.
밤샘으로 결석이 계속되니 담임 선생님이 미리 결석계와 체험학습신청서를 인쇄해 줄 정도였다. 오전 11시까지만이라도 등교시켜 달라는 학교의 요청도 있었다. 이렇게 학교가 사정을 봐 주는데도 작년 1학기 결석 일수만 30일이 넘어갔다.
소영씨는 1학년 때 원격수업과 등교가 번갈아 이뤄지면서 성현이가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 학교를 가는 생활습관은 무너졌고, 학교를 '꼭 가야하는 곳'이라고 인식하지도 않았단다.
돌변한 성현이를 감당하는 건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평소 이용하던 복지 프로그램이 축소됐다. 성현이가 좋아하던 미술치료는 복지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집에서 셀프 키트로 대신했다. 그리기를 봐주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코로나 전엔 아동센터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1시간 방문 수업을 해줬지만, 감염 우려로 이마저도 중단됐다. 팬데믹으로 일상은 무너졌고,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아이는 계속 게임에만 빠져들었다.
엄마는 점점 지쳐갔다. 삼남매를 혼자선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성현이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집안 살림을 중고장터에 올리거나, 온 집안에 참기름을 뿌리는 기행도 반복했다. 결국 지난해 말 대학병원에서 약 40일 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후에도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지만, 지난달 외삼촌의 계좌에서 몰래 돈을 빼내는 등 불량한 태도는 계속되고 있다.
아들의 비행, 엄마의 폭행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은 성현이네. 무척이나 예외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 이후 교육과 양육의 책임을 오롯이 혼자 져야만 했던 한부모 가정에선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저마다 양육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준비되지 않은 부모에겐 굉장한 스트레스"라며 "적어도 학교에 있는 동안은 양육 스트레스가 없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사라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육 스트레스가 학대로 이어지는 건 성현이네의 일만은 아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아동학대 건수는 3만7,605건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3만45건)보다 비해 25.2% 증가했다. 김미숙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가족이 집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서로가 주는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구성원 간 갈등과 아동학대의 한 원인이 됐다"고 풀이했다.
등교가 중단되니 학대 아동을 발견하는 건 더 어려워졌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코로나 이후 가정 내 학대가 많아지며 아동학대가 밀실화됐다"고 설명했다. 2019년 아동학대 의심사례의 신고자 중 15.4%가 초·중·고 교직원이었지만, 이 비율은 2020년 9.8%, 2021년 11.6%로 떨어졌다. 학교의 학대 방지 기능이 약화된 것이다. 반대로 학대 가해자 중 부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75.6%에서 2021년 83.7%로 늘었다. 소영씨 경우도 스스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사건이었다.
특히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유형 중 '방임'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아동학대는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으로 분류된다. 정혜영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노원지회장은 "방임은 온 집안이 쓰레기장이거나 아이가 혼자 굶어 죽는 경우에만 신고가 들어간다"며 "하지만 아이가 혼자 집과 학교를 오가고, 식사를 챙겨주지 않는 것도 방임"이라고 지적했다. 큰 소리를 지르는 것도 당연히 학대다.
팬데믹 3년 간 보호자 스트레스는 급증했지만 실질적으로 양육을 돕는 정책은 부족했다. 올해 10세, 6세가 되는 두 손자를 아내와 함께 키우는 이모(70)씨는 "24시간 아이와 꼼짝없이 집에서 같이 있는데, 할 게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단순히 EBS나 줌으로 공부만 시킬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 프로그램을 방송하거나 교구라도 대여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고금란 아동권리보장원장 직무대리도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양육자 역량 및 지원을 위한 정책의 성과는 낮은 점수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다시 성현이네 집 얘기로 돌아와서. 학대 사건 이후에도 성현이는 엄마와 분리되는 걸 강하게 거부했다. 지난해 10월 대학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도 매일 전화를 걸어 "엄마 언제 와?"라고 물었다. 지금도 안방 침대에서 엄마와 함께 잠드는 전형적인 막내다.
엄마 소영씨는 막내에게 큰 실수를 했던 것을 뼈져리게 반성하며,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싶다는 각오를 계속 내비쳤다. 성현이 치료를 위해 왕복 4시간 거리 대학병원도 꾸준히 다녔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쉽지 않은 인터뷰였음에도, 기자들 앞에서 그 때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결심한 것도 '잘 키워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 '의지'를 어떻게 '행동'으로 옮겨야 할 지, 그 해답을 아직 소영씨는 찾지 못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강의를 듣고 있는 소영씨는 "아이에게 소리지르면 안된다, 때리면 안된다, 아무리 화가 나도 가라앉혀라, 이런 이야기는 수십번 들었다"면서도 "하지만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 앞에서) 이걸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