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6,000억 원대 피해를 낸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 주범으로 1심에서 징역 30년과 추징금 770억 원을 선고받은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횡령금 가운데 수십억 원을 조직폭력배 출신 지인들에게 도둑맞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최근 특수절도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5명에 대한 6차 공판을 진행했다. A씨 등은 김 전 회장이 2018년부터 2019년 1월까지 빼돌린 수원여객 운용자금 240억여 원 가운데 34억 원을 훔친 혐의로 지난해 7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019년 1월 과거 광주광역시에서 함께 조직폭력배로 활동했던 A씨에게 횡령금 40억 원을 5만 원권 등으로 환전해 오라며 명동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A씨는 그러나 조폭 출신인 B씨와 김 전 회장 돈을 훔치기로 마음먹고, 김 전 회장에게 "경찰 추적을 피해야 하니 차를 바꿔 타자"고 제안했다. 김 전 회장은 현금을 실은 캐리어 2개를 A씨 차량에 실었고, A씨 등은 부하들과 함께 캐리어를 훔쳐 주거지로 도망쳤다. 당시 캐리어에는 40억 원에서 환전수수료를 뺀 34억여 원이 담겨 있었다.
A씨와 B씨는 검찰 조사에서 김 전 회장이 수원여객 횡령 사건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뒤라 돈을 훔쳐도 신고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김 전 회장은 절도 사실을 알게 된 후 차명으로 도난 신고를 했다. 신고 당시 이름을 빌려준 회사 직원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 전 회장이 바빠서 대신 사건 접수를 해달라고 했다"며 "수원여객 횡령금인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A씨 등의 재판에 유독 관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1심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770억 원이라는 거액의 추징금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추징금은 물론이고 변호사 선임비를 낼 돈조차 없을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등이 훔쳐갔던 돈을 돌려받는 게 김 전 회장에게는 절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 절도범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져도 추징 명령은 극히 드문 데다, 추징금은 국가에 귀속되기에 김 전 회장 수중으로 들어가는 돈은 없다. 김 전 회장은 이에 A씨 일당 중 한 명과 10억 원 정도에 합의를 시도하는 등 자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주범인 B씨가 지난해 7월 라임 사건으로 법정 증언을 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데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훔친 돈 상당액을 이미 탕진해 버렸기 때문이다.
일부 피고인은 김 전 회장의 횡령금을 훔친 것이 '불가벌적 사후행위(이미 범행으로 얻은 이익을 확보·사용·처분하는 행위)'에 해당해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신과 합의하면 감형받을 수 있다는 김 전 회장 전략이 절도범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