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고위공무원이 소청심사위원회에서 동료 직원의 병력(病歷)을 공개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서면 경고 권고를 받은 뒤 불복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징계 사유와 무관한 병력을 거론했기에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하지만 해당 공무원은 법무부에서 아무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승진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신명희)는 최근 법무부 고위공무원 A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제기한 권고 처분 무효 등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4년 전 법무부에 함께 근무하던 B씨의 징계 과정에서 비롯됐다. B씨는 2019년 직원들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반복했다는 이유(품위유지의무 위반)로 해임된 뒤 불복 절차를 밟고 있었다. A씨는 당시 소청심사위원회에 법무부 장관을 대리해 참석했다.
B씨는 소청심사위가 끝난 뒤 "A씨로부터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A씨가 해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B씨의 사전 양해 없이 병력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병력 무단 공개를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①징계사유와 무관한 개인 정보를 부적절하게 취급했고 ②의도적으로 해임 관련 심사에 부당한 영향을 주려고 했다는 취지다. 인권위는 2019년 8월 법무부에 A씨에 대한 서면 경고 조치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A씨는 인권위 결정에 반발했다. 행정심판 청구 등 불복 절차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021년 1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장관 대리인으로서 징계업무와 관련해 민감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처리할 권한이 있다"며 "B씨의 건강 등이 징계사유로 포함돼 있었는데도 인권위가 사실관계를 고의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재발방지 대책 마련 권고 내용이 모호해 공직기강을 무너뜨린다"고도 했다.
법원은 그러나 인권위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소청심사위 쟁점이 (병력이 아닌) 품위유지 위반인 데다 B씨 해임 소송 판결문 등에 병력 관련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며 "쟁점과 무관한 민감정보가 소청심사위 참석자들에게 공개된 건 그 자체로 인격권 침해"라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인권위 권고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장관이 재발방지를 위한 구체적 이행계획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권고가 막연하지 않다"며 기각했다.
인권위의 징계 권고에도 A씨는 2020년 7월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했다. 법무부 측은 '징계 여부와 승진의 정당성'에 대한 본보 질의에 "A씨가 진행 중인 재판 결과가 나오면 인권위 권고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면서도 "서면 경고는 승진에 대한 결격 사유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본보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반면 B씨는 해임 소송에서 2021년 승소가 확정돼 복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 해임 소송을 대리했던 양홍석 변호사는 "사과는커녕 소송전으로 징계 권고를 무력화하는 행태가 정순신 변호사와 다를 게 없다"며 "인권 보호를 사명으로 하는 법무부가 해당 공직자를 승진시킨 것은 인권침해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