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각 지자체는 저마다 ‘맛의 고장’임을 자랑한다. 오랜 세월 전해오는 고유의 음식뿐만 아니라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새로운 맛 개발과 홍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3일 두륜산 자락 해남유스텔에서는 해남군과 해남관광재단 주최로 ‘제철 진미파티’가 열렸다. 2월의 요리로 선정된 간재미(가오리보다 조금 작은 어류) 찜과 회무침을 비롯해 홍어애국, 연근찰밥, 매생이굴전, 굴쌀국 등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요리가 아니라, 일상에 녹아 있는 음식에 모양과 손맛을 보탠 메뉴다.
이른바 ‘해남8미’도 지역 주민의 입맛에서 진화한 음식이다. 보리쌈밥, 산채정식, 떡갈비, 닭코스요리, 삼치회, 생고기, 한정식, 황칠오리백숙이 목록에 올라 있다. 주메뉴 못지않게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밑반찬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다.
착한 가격에 배부른 자연 밥상을 원한다면 ‘보리쌈밥’이 제격이다. 요즘 해남 들녘에는 보리가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다. 가난한 시절의 상징이었던 보리밥이 어느새 일부러 찾는 건강식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식이섬유, 비타민B, 아미노산 등의 영양소가 풍부한 웰빙 음식으로 대접받는다.
전국 어디에나 흔하지만 해남 보리쌈밥은 조금 특별하다. 보리밥 정식에 기본적으로 20여 가지 밑반찬이 차려진다. 무생채, 콩나물이 포함된 4가지 나물 반찬에 요즘에는 상큼하고 달큰한 봄동무침이 추가된다.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선짓국, 차조밥과 약밥 등이 반찬과 함께 상에 오르는 것도 이색적이다. 각종 나물을 보리밥에 얹고 강된장, 고추장, 토하젓에 참기름을 두른 후 쓱쓱 비비면 맛있는 보리비빔밥이 완성된다. 식성에 따라 배춧속이나 상추에 싸서 먹어도 맛있다. 이렇게 차려진 정식이 1인 1만 원이다. 대흥사 인근 달동네보리밥·쌈밥식당, 태웅식당, 물레방아식당, 별미쌈밥식당 등에서 맛볼 수 있다.
대흥사로 가는 길목에 눈에 띄는 또 다른 간판이 ‘통닭’ 혹은 ‘닭 코스’ 식당이다. 해남에서 ‘통닭’은 기름에 튀기는 치킨이 아니라, 버리는 것 없이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다는 의미다.
자리에 앉으면 먼저 불판에 고추장과 갖은 양념으로 빨갛게 버무린 주물럭이 얹힌다. 이와 함께 먹기 좋은 크기로 저민 닭 가슴살 육회, 닭 날개를 다진 샐러드, 선홍빛 속살의 모래주머니가 나온다. 닭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것에 거부감이 들 만한데, 기름소금에 찍으면 의외로 고소하다.
주물럭을 모두 먹고 나면, 한약재를 넣고 푹 삶은 백숙과 닭죽이 등장한다. 쫄깃쫄깃한 고깃살을 죽에 얹어 먹는다. 이렇게 차려진 ‘통닭’ 코스 요리가 보통 7만 원, 성인 3~4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비결은 3kg이 넘는 토종닭이다. 백숙에 나오는 닭다리 골격이 낯설게 보일 정도다. 해남읍의 원조장수통닭, 해물밭에노는닭, 문내면의 수정가든, 삼산면의 정든집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삼치회는 이 시기 남부 해안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별미다. 냉동하지 않은 삼치회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참치처럼 얼렸다 먹을 수도 있지만, 제맛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해남의 삼치회는 주로 추자도 근해에서 잡은 4~5kg짜리를 사용하는데, 살이 무르기 때문에 두툼하게 썰어 나온다. 부드럽게 씹히는 생선살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지역마다 먹는 방법이 다른데, 해남에선 쪽파를 듬뿍 넣은 양념장에 찍어 김에 싸서 먹는다. 해남읍의 이학식당, 송지면의 바다동산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해남8미에 포함되지 않지만, 대표 주전부리로 고구마빵을 꼽는다. 기름진 황토에서 자란 해남 특산물을 활용한 먹거리다. 겉모양과 속, 맛까지 달달하고 쫀득쫀득한 고구마를 쏙 빼닮았다.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감자빵도 있다. 해남읍의 피낭시에, 더라이스 제과점에서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