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낙태약' 소송전, 미국 임신중지 전쟁 '최후의 보루' 됐다

입력
2023.02.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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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 법률이 결정하는 '임신중지권' 존폐
이동 쉽고 혈액 검출 안 돼...주법 위 '낙태약'
반대론자는 '공화 텃밭'에서 "미 전역 금지"
제약회사·찬성론자 "접근권 지키자" 맞불

미국에서 벌어지는 '임신중지권 전쟁'의 판도가 작은 알약 하나로 결판이 난다. 바로 '먹는 낙태약' 미프진이다. 1973년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지난해 미 연방대법원이 49년 만에 뒤집으면서, 미국에선 현재 개별 주(州)가 임신중지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주법의 적용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미프진의 판매 금지 여부를 두고 소송이 진행 중이다. 미프진은 낙태반대론자에겐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자, 찬성론자에게는 '최후의 보루'가 됐다.

주법 영향 밖 미프진, 최후의 '임신중지' 방법 되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내 임신중지권의 미래가 미프진에 달려 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6월 미 연방대법원은 '15주 이후 임신중절 전면 금지' 내용을 담은 미시시피주 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49년 전 대법원이 인정했던 '임신중지권'이 사실상 무효화한 것이다. 이때부터 임신중지는 각 주정부와 입법부가 만든 '주 법률'의 결정을 따르게 됐다.

하지만 미프진은 '임신중지권 폐지'를 명시한 주법의 영향 밖에 있었다. 고정된 장소에서 시술이 이뤄지는 중절 수술과 달리, 작은 알약 형태의 미프진은 이동이 쉬웠다. 임신중지를 금하지 않는 주로 이동해 복용하면 위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혈액검사에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아 자연 유산과의 구분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불법'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셈이다.

'미프진 소송전'의 도화선이 된 건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결정이었다. FDA는 올해부터 일반 소매 약국에서 낙태약 판매를 허용했다. 기존에는 실제 의사를 만나 처방전을 받거나 통신판매 약국을 통해서만 약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승인을 통해 △원격진료로 발행한 처방전만 있으면 △일반 약국을 통해서도 약을 구할 수 있게 됐다. 연방기관이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더 보장해 준 것이다. 연방법과 주법이 충돌했을 경우, 최고 법원이 주관하는 연방법이 우선시된다.


'하나의 알약, 두 개의 소송'...약물 통한 임신중지의 미래는

이 소식이 전해지자 낙태반대론자들은 텍사스주로 달려갔다. 텍사스주는 본래 '공화당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매튜 캑스마릭 판사가 있어 낙태 반대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확률이 더 높다.

낙태반대단체인 자유수호연대(ADF)는 텍사스주 에머릴로의 연방지법에서 '미국 전역에서 미페프리스톤(미프진의 성분명)의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며 FDA의 결정에 이의제기소송을 냈다. 지난 24일 최종 변론에서 이들은 미프진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가처분도 신청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법학자들을 인용해 “(미프진의) 즉각적 폐기로 이어질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판매금지가 받아들여지면 판결이 나기 전부터 미국 전역에 적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약물을 두고 정반대 소송도 있었다.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는 미프진 제조사인 젠바이오프로가 임신중지를 금지한 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기관인 FDA의 승인을 받아 유통되는 약물은 연방법에 의해 보호받으며, 이는 웨스트버지니아주 법이 금지하는 임신중지를 상회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젠바이오프로가 승소한다면, 이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임신중지 금지에 반하는 첫 사례가 된다. 다른 주에 선례로도 작용할 수 있다. 젠바이오프로는 대형 제약사 중 낙태반대론자들이 FDA에 소송을 건 뒤, '침묵'을 깬 첫 주자다. 하나의 약물을 두고 양쪽 모두 재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