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시화집을 만나다

입력
2023.02.27 21:00
25면
신형철 지음, '인생의 역사'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소설과 에세이를 유독 좋아하지만 책방지기를 하면서부터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나고 읽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길이 잘 가지 않았던 장르는 바로 시집이었다. 학창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시'는 시험을 위해 그저 달달 외워야 하는 것이었고, 짧은 문장 속에 담긴 의미는 한없이 어렵게 느껴져서 결코 친해질 수 없었다. 언제가 우연히 신간을 살펴보던 중 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에 출간한 책으로 화제가 되었던 '인생의 역사' 프롤로그를 펼쳐 보았는데 '시'에 대해 처음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걸어갈 행, 이어질 연이고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 바로 이 문장 때문에 평론가가 쓴 시화집이니 생각만 해도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책방지기인 나에게 '시'라는 장르를 궁금하게 하고 읽고 싶게 만든 책을 만난 건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의 역사'는 저자가 사랑한 25편의 시를 기재했고, 우리에게 단순히 시를 읽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글이 아니라 시를 통해 인생을 살아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은 1부 고통의 각, 2부 사랑의 면, 3부 죽음의 점, 4부 역사의 선, 5부 인생의 원으로 나뉘어 인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 시 중에서 가장 마음이 닿았던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었다.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을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위 시는 우리 인생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를 은유하고 있고, 이 마지막 구절은 가장 많이 인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덜 지난 길을 택하였고' 이 문장은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자의 용기와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화자가 간파한 진실은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를 원하고, 또 가능하다면 그 이유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먼 훗날 나의 선택이 아름답게 미화된 방식으로 회상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까?

2020년 7월, 내 인생의 여름 같았던… 뜨겁고 치열하게 열정을 불태우며 10년 넘게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살이를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걱정 때문에 나는 안정된 길을 버리고 가지 않은 길에 발을 내딛는 것이 두려웠다. 가슴이 턱 막히고 숨쉬기가 어렵다고 느껴지던 어느 날 더 이상 주저하지 말자 다짐하며 퇴사를 선택했다. 주위 사람들은 '용기 있다', '멋지다', '응원한다'는 말로 나를 격려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나의 선택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조금만 버텨볼걸… 승진하고 직함이 바뀌면 내 삶도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이제 나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지?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늘어만 가는 날들이었고, 동경해오던 제주의 삶에 감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후회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후회와 걱정과 제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1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몸과 마음이 점점 황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나의 길은 어둡고 외롭고 쓸쓸하기만 했다. '아 이건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닌데…'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았기에 이곳 제주에서는 '내가 진심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자'라고 다짐하며 책과 사람을 좋아했기에 용기 내어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길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일 수 있다. 나는 이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오랫동안 책방을 지켜나가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 길을 선택했기에 회사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고, 또한 진정으로 좋은 인연들을 만나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저자는 시인의 뜻을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란 없으니 일단 하나의 길을 선택했다면 가지 않은 길에는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것'이라고.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보다는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에 집중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나의 길이 행복의 길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매 순간 정성을 다해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