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문명이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종교적 관행과 다른 정치체제로 그리스에는 많은 도시 국가가 있었다. 그중 앙숙이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는 국가다. 이 두 국가의 제도는 많은 차이가 있었는데 교육시스템도 많이 달랐다. 교육이 두 국가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 과언일까?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의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고 했다.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본 그는 교육의 목적을 행복한 사람을 양성하는 데 두었다. 교육과정에서 사람의 본성, 습관, 이성의 조화를 특히 강조했다. 물론 그도 교육 대상을 자유 시민으로 한정했고 노예는 대상에서 제외한 한계가 있다. 아테네는 원래 심신이 조화를 이룬 공동체의 일원인 시민양성을 목적으로 전인교육을 표방했었다. 초기 아테네 교육은 수학, 쓰기, 읽기는 물론 음악, 달리기, 점프 같은 예체능을 포함했다. 초등 교육을 마친 후 시민은 철학을 배웠다. 지도, 알람 시계, 주행거리계, 중앙난방 시스템, 자동문의 원리가 아테네에서 비롯되었다. 이 같은 과학의 발상지이자 히포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의 탄생지다.
안타깝게도 교육 목표가 국가보다 개인적 교양과 출세에 더 치중해 변화했다. 지식교육이 강조되면서 육체적·군사적 훈련은 점차 밀려났다. 지식 교육의 성행에 자유로운 정치사상 발전이 더해지며 웅변술이 등장했다. 소피스트(Sophist)는 ‘지혜로운 사람들’로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나, 차츰 자기 이익을 너무 차리고 남을 괴롭히는 말재주꾼이라고 하여 ‘궤변가’란 뜻으로 변모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스트가 청년들에게 너무 유용한 지식만을 가르친다며 평가절하했다. 소피스트로 인해 아테네에서는 실용적 학문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970년 사망한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말을 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세 가지 열정은 아테네 초기 교육의 조화로운 인간상 양성이란 목표를 닮은 것 같다. 지식의 습득 없이 역량의 함양이나 발휘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식 연마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치게 학원가의 ‘일타강사’인 소피스트들을 숭배하며 선택지에서 정답 하나 고르는 연습을 아이들에게 강요해 온 것은 아닐까? 단순 지식습득 위주의 시험공부에 매달릴 때 문제가 발생한다. 경계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력 배양을 위한 심층적인 두뇌 활동이 방해되기 때문이다. 주입식 교육의 예로 후기 아테네 교육을 생각하며 러셀식 교육을 할 수 없을까 하고 동경해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어록을 따라 스파르타가 망한 이유를 찾아보자. 그에 의하면 스파르타는 인구 부족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일까? 스파르타는 소수의 시민이 다수의 노예를 지배하는 사회였다. 노예 수가 시민의 20배에 이르러 노예의 반란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은 엄격한 군국주의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 목적은 무사양성에 있었다. 국방을 담당할 이상적인 전사를 배출하기 위해 군국주의 과제 수행이 지상선이었다. 정복, 인내, 희생정신, 애국정신, 용기가 시민의 주요 덕목으로 강제됐다. 이에 합당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은 치밀하게 제도화되고 국가가 통제했다. 스파르타 교육은 후세에 전체주의·국가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스파르타의 군사적 우수성에 대한 집요한 관심은 다른 그리스 도시 국가들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전사 사회라는 악명을 얻게 했다. 이런 강한 인상은 스파르타가 적들에게 정복당하거나 약탈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의 영웅들을 동경하는가? 전사 시민들의 전설적인 지위는 스파르타가 역사의 대부분 동안 도시 성벽을 가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스파르타인은 어떤 적도 감히 그들을 공격하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로 여겨졌다. 스파르타식 생활 방식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지는 않았다. 스파르타는 행동 강령에 엄격하게 복종해야 하는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였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스파르타인은 처벌 대상이었고 경우에 따라 도시에서 추방되었다. 체격이 왜소하거나 장애가 있는 갓난아이는 버려진다. 산속 깊은 구덩이에 내다 버려 죽이는 것이 법제화돼 있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아이는 싸우는 법을 터득한다. 스파르타인은 절대 물러서거나 항복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죽는 게 최고의 영광이었다. 7세까지 집에서 아버지에게 기본적인 전투상식과 소양, 철학, 예절을 배운다. 이후 남성은 전사가 되기 위해 엄격한 스파르타의 모든 남성 시민을 위한 국가 주도의 교육인 아고게를 시작한다. 스파르타인의 교육 시스템은 7세부터 30세까지 전쟁과 전투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군복무를 기반으로 했다.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는 상상을 초월했고 이는 훗날 사교육비 증가와 인구 감소라는 문제로 봉착했다.
스파르타는 정치·군사적으로는 집단주의지만 경제는 개인이 부담했다. 성인 남성이 15명씩 조를 짜서 함께 공동식당을 이용해도 비용은 각자 개인이 부담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비용도 모두 개인의 몫이었다. 공동 식비나 교육비를 내지 못하는 것은 스파르타 시민으로서 최악의 수치였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부(富)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토지를 소유한 가문이 고작 100여 개 정도로 줄었다. 결국 빈곤의 늪에 빠진 절대다수의 스파르타인은 본국에서의 삶을 감당할 수 없어 아테네 같은 주변 국가로 도망쳤다. 스파르타 시민권을 가진 남성인 스파르탄은 기원전 640년 9,000명에서 300년 뒤에는 1,000명으로 급감했다. 빈부격차가 크지 않았던 전성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높은 사교육비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어서 출산율이 줄어 인구가 급감했다. 시민 인구의 절대 감소는 스파르타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후기 아테네의 주입식 교육과 스파르타의 높은 사교육비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우선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 깔릴 것 같은 달팽이의 두려움이 엄습하는 우리 교육이 상기된다. 교육도 소비재의 대상이기에 시장 원리를 도입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교육을 충분히 상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 문제는 없을까? 교육이 공공재적 성격을 상당히 내포하고 있기에 그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모든 이에게 가능하냐는 형평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지나친 상품화가 오히려 과잉교육이라는 외부비경제 현상(경제활동에서 발생한 어떤 행위가 생산자나 소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부정적인 영향)도 초래한다. 교육이 지나치게 상품화되면, 소비에서 소외받은 계층들의 불만이 커져 사회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교육물가지수가 소비자물가지수를 훨씬 웃돈다면 이 역시 대다수 국민에게 어려운 생계를 강요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정부가 교육을 지원하는 이유는 교육이 개인의 소득 증가는 물론 사회와 국가 운영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입시교육을 위한 사교육의 지나친 상품화와 보편화는 불필요한 교육 소비까지 부추겨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저해한다. 교육에 대한 자원 배분이 적정한가는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을 분석해 밝혀야 하지만, 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교육의 사적 수익을 소득으로 환산할 경우 투자자의 전 생애 소득을 추정해야 한다. 독서의 기쁨, 직업만족도처럼 화폐로 환산하기 어려운 이익도 고려해야 하지만 측정이 어렵다. 교육의 비용을 분석하려면 등록금, 포기한 소득 등을 살펴봐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따라서 교육 투자 수익률에는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입시교육이라는 상품을 구입하는 데 있어, 많은 사람들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밴드왜건 효과를 발생시킨다면 이는 비용만 상승시킨다. 취업이 잘 안 되면, 교육 투자 수익률은 낮아지고 사회 전체적으로 자원 낭비가 심해진다. 이러한 불만족이 고비용 저효율 사회에서 만혼, 비혼, 출산 감소, 지방대 소멸 가능성으로 귀결되고 있다.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이 행복하고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이다. 차별 없는 사회,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 내일도 중요하나 오늘을 즐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 개혁이 중요하지만 해법을 찾기는 너무 어렵다. 투자로서의 교육보다 소비로서 교육이 더욱 부각되고 있어 실타래를 풀기가 쉽지 않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인기다. 사교육 메카인 강남의 모 학원가에서 일타강사 수업의 앞자리 차지를 위해 학생도 아닌 학부모가, 학부모에게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이 줄을 선다. 극중 반찬 가게 아줌마 역할의 전도연은 말한다.
“난 이 대한민국 사교육 과열은 다 엄마들 책임이라고 봐. 너무 유난들인 거지. 유난이 유난을 낳고 유난이 집착이 되고, 집착은 또 경쟁을 낳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서 끊어야 할까. 부모의 욕망을 파고든 학원마케팅에서 소피스트의 궤변이 연상된다. 궤변에 속은 부모 마음을 돌려야 병들지 않은 사회를 일굴 수 있을 것이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