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데 한국 무기를 쓰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한다"며 한국의 무기 지원을 거듭 요청했다.
베레슈크 부총리는 25일(현지시간) 키이우 부총리 공관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땅에서 몰아낸 뒤 우크라이나를 내버려 두도록 하는 용도로만 한국 무기를 쓸 것"이라면서 '살상 무기 지원은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영토와 주권을 노리고 침략한 러시아와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땅을 단 1㎠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베레슈크 부총리는 한국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무기 지원에 신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폭군(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주지 않았으니, 한국과 싸우지 않겠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러시아의 눈치를 보는 것이 한국의 실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일보의 베레슈크 부총리 인터뷰는 지난해 7월 이후 두 번째다. 8개월 전보다 다소 야윈 모습의 그는 "올해 안에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문장으로 모든 답변을 맺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더 굳건해진 듯했다.
베레슈크 부총리의 남편과 아들 모두 전장에 투입됐다. 남편은 최고 격전지인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서 싸웠고, 24일 밤 키이우로 복귀했다. 우크라이나 지도층과 그 가족들이 죽음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베레슈크 부총리는 군사 지원 다음으로 한국의 지원과 협력이 가장 필요한 분야로 피란민이 거주할 임시주택 건설을 꼽았다. 이번 인터뷰에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곳곳에 매설한 지뢰 제거를 위한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지뢰 탐지와 제거와 관련한 많은 경험을 갖고 있으며, 기술력이 풍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우크라이나 인도적 지원 방안에는 지뢰 제거 지원이 포함돼 있다.
베레슈크 부총리는 러시아가 침략 1년(2월 24일)을 조용히 보낸 것을 두고 "러시아군의 전력이 떨어졌다는 게 분명해졌다"면서 "러시아가 전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 만한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수개월째 소모전이 벌어지는 동부 지역의 전황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베레슈크 부총리는 "그렇기 때문에 전장에 무기가 더 많이, 더 빨리 공급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베레슈크 부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에도 국가 대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군 수뇌부가 연루된 군납 비리를 비롯한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무관용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국방부 차관에 이어 합참의장이 비리 혐의로 옷을 벗었다. 베레슈크 부총리는 "부패에 관한 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과거에도 그랬다는 말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정부 인사들에게 늘 다짐을 받는다"고 말했다.
베레슈크 부총리는 전쟁 전에는 매일의 목표를 세우고 이행하는 식으로 업무를 했다. 전쟁 시작 이후엔 그럴 수 없다. "오늘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우크라이나가 올해 안에 승리할 것은 확실하다"면서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고, 이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년 1월에 내가 한국일보와 다시 인터뷰한다면, 그때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평화'를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