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원격수업 이후 ①스마트폰 과다 의존 ②밤낮을 바꿔 사는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초등학교 6학년생 은솔(가명)이는 지난달 23일 일산명지병원 김현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외롭지 않느냐"는 김 교수의 질문에 은솔이는 고개를 저었다.
▶은솔이가 스마트폰에 빠져 밤낮을 바꿔 살게 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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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솔이는 상담 내내 친구 관계를 묻는 김 교수의 질문에 의연하게 받아 넘겼다. "친구와 잘 지내냐"는 물음엔 "학교 친구들은 많다"며 "친구와 게임은 별개의 문제"라고 딱 선을 그었다. 이어 "게임을 많이 해서 친구가 줄지는 않았다"고 말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이들에게 남긴 상처들'의 저자이기도 한 김 교수와 은솔이의 만남은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의 의뢰로 성사됐다. 김 교수는 은솔이의 스마트폰 중독 상태를 파악하고자 스마트폰 구매 시기, 생활패턴 등 다양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그러다 김 교수는 은솔이가 즐겨하고 있다는 로블록스(게임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에 주목했다. 로블록스는 가상세계에 직접 게임을 만들어, 자신이 만든 게임에 다른 이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은솔이는 코로나 기간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이 가상공간에서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외롭지 않다"고 말했던 은솔이가 로블록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를 물으며 끈질기게 은솔이의 생각을 이끌어냈다.
이어 김 교수가 은솔이에게 "스마트폰에 중독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은솔이는 차분하게 자신이 게임에 빠지게 된 이유를 되짚어보며 답했다. “핸드폰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썼고요,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못 만나니 놀고 싶어서 그랬어요.”
어떤 질문에도 기계처럼 툭툭 답만 던지던 은솔이. 무뚝뚝해 보였던 이 아이도 엄마 얘기가 나오자 무너졌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은솔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훌쩍이며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에게 미안했던 점이 많았는지 마음 한쪽에 쌓아뒀던 감정이 터진 순간이었다. 김 교수는 진료실 밖에 대기하던 엄마를 불러 은솔이 옆에 앉혔다. 엄마는 은솔이의 손을 꼭 잡고 어루만졌다.
엄마도 은솔이의 눈물을 보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꺼냈다. 이혼한 싱글맘인 엄마는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고 막내(은솔이 동생)가 아프다 보니 은솔이를 잘 챙겨주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은솔이는 엄마가 동생만 보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엄마가 가끔씩 야속했다"고 감정을 드러냈다.
상담이 끝나고 김 교수는 “은솔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사실 많이 외로운 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가 닥치자 집 근처에 사는 친구가 없는 은솔이는 스마트폰 게임을 통해 외로움을 달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은솔이가 ‘애어른’ 같다고 했다. 그는 “누가 은솔이를 초등학교 6학년으로 볼까”라고 운을 뗀 뒤 “은솔이는 엄마가 동생 간병을 해야 하니 신경 쓰이지 않게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게 은솔이가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워진 이유”라고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가 종식 단계로 접어들고 은솔이의 개선 의지도 충분히 있기에 스마트폰 중독 증세가 더 심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앞서 꼬치꼬치 물어보며 로블록스가 어떤 게임인지 파악한 김 교수는 “은솔이가 즐겨 하는 로블록스라는 게임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게임"이라며 "사행성, 경쟁성 요소가 적어 중독성이 강한 게임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모녀가 함께하는 시간이 늘수록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로 일상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은솔이 가정은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취약성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며 “코로나로 결손이 생긴 아동들은 오늘날 일상이 회복되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가에서 이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이 끝나고 은솔이네 가족은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메뉴는 은솔이가 가장 좋아하는 마라탕. 은솔이는 마라탕을 처음 먹는 엄마의 그릇에 자기가 좋아하는 중국당면을 덜어줬다. 이날 밤 잠들기 전 엄마는 은솔이에게 마음을 전하며, 말없이 엄마를 챙겨준 딸에게 화답했다. “은솔아, 엄마가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해. 될 수 있는 한 엄마도 너랑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할게. 은솔이도 속상한 부분 있으면 속에 담아두지 말고 엄마한테 얘기해줘”.
은솔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솔이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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