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 직장인으로 붐비는 백화점 문화센터(문센). 그러나 처음부터 이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부잣집 '사모님'들의 친분을 쌓는 모임 장소로 여겨졌던 문센은 어떻게 MZ세대의 놀이터가 됐을까.
국내 유통업체가 운영한 첫 문화센터는 1984년 동방프라자(현 신세계백화점)에 있었다. 이전까지는 대부분 '서울YWCA', '한국여성의 집' 등 여성단체에서 4050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취미 강의를 운영했다. 1982년 한국일보 문화센터도 에어로빅 댄스, 전통매듭 짓기, 바가지 공예 등 다양한 강의를 운영했는데 사회공헌 활동 성격이 강했다.
백화점 문센이 요즘과 같은 모양새를 갖춘 것은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이 문을 열 때부터다. 이후 1988년 롯데백화점 등 다른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센 수강생을 모집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셔틀버스까지 운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고객 유치 경쟁이 벌어졌다. 여기에 1999년부터 대형마트들도 문센를 따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백화점보다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마트도 뛰어들면서 문센은 시민들에게 보다 친근한 공간으로 거듭났고 '문센 경쟁'은 더 뜨거워졌다.
프로그램 내용을 들여다보면 1980~90년대 백화점 문센은 재봉틀, 공예, 노래교실, 미술 등 4050 주부들을 위한 취미 강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남성 수강생이 늘면서 이스라엘 격투기, 루어 낚시, 탈모·전립선 질환을 이겨내는 방법 등 남성 수강생을 겨냥한 강의들도 선보였다. 고령화 사회가 화두가 된 2010년부터 큰손으로 떠오른 노인 세대를 잡기 위한 실버 전용 강의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화센터는 중년 주부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MZ세대가 주인공으로 떠오른 건 2018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부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려 문센을 찾는 2030 직장인이 크게 늘면서 수제 맥주 만들기, 피아노 배우기 등 '워라밸(Work & Life Balance)'에 초점을 맞춘 강의가 인기를 끌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2020년 문센은 침체기를 맞았지만 비대면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강의를 개발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문센 강의를 들여다보면 시대의 변화와 국내 경기의 흐름도 확인할 수 있다. 1990년대 PC 보급기에는 컴퓨터, 인터넷을 처음 다뤄 보는 성인을 대상으로 기초 사용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대세를 이뤘지만 스마트폰 사용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이 일상이 된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 활용법, SNS 무작정 따라하기, SNS 인맥 형성 노하우를 다룬 강의도 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 때인 1998년에는 실속차량관리법, 알뜰가계 운영법, 컴퓨터로 하는 재택 사업과 같은 불황 극복을 위한 실속형 강의가 많았다. 또 한식 조리사나 제과제빵기능사 준비반 등 부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자격증 취득 강의에도 수강생이 몰렸다.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은 지난해부터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아트테크, 앱테크 등 디지털 자산 관련 재테크 강의가 각광을 받고 있다.
엔데믹(풍토병화)을 맞은 후 메이크업, 스포츠 등 마스크를 착용하고는 듣기 쉽지 않았던 분야도 다시 다뤄지고 있다. 김수민 롯데백화점 문센 책임은 "봄을 맞아 화장품 브랜드와 손잡고 진행하는 메이크업 강의가 인기"라며 "개개인에 맞춘 퍼스널 컬러 컨설팅으로 더 개성 있게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익힐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백화점 문센은 깨끗한 환경, 수준 높은 강의로 고객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주면서 백화점 자체 이미지를 올려준다"며 "다만 주변에 과시하기 좋은 이벤트성 프로그램보다는 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나 사회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내실 있는 강의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