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 연속휴식' 보장한다더니...건강권 보호 약해진 52시간제 개편안

입력
2023.02.2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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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건강권 보호 위해 진일보한 방안"
노동계 "건강권 포기한 시대역행적 발상"

지난해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 논란 당시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면 근로자 건강권 보호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정부가 11시간 연속휴식이 없어도 되는 '우회로'를 검토하고 있다. 검토안대로면 극단적인 경우 법정 휴게시간(4시간마다 30분씩)만 지키며 3일 내내 잠잘 틈 없이 일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경영계가 토로하는 현장 어려움을 반영한 검토안에 노동계는 "과거로의 회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4일 개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대국민 토론회에서 현행 주 52시간으로 고정돼 있는 근로시간을 '연장근로 총량관리'로 유연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양대노총은 토론회 참석을 거부해 참석자 10인 중 노동계 대표는 'MZ노조' 중 하나인 LG전자 사람중심사무직노조의 유준환 위원장뿐이었다.

고용부가 준비 중인 연장근로 총량관리 제도는 연장근로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다양하게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다만 과도하게 노동시간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이라는 근로자 건강권 보호 규정을 꾸준히 강조했다. 이에 따르면 산술적으로 일주일에 최대 69시간(주 7일 일할 경우 80.5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에서 고용부는 "11시간 연속휴식 없이 최대 근로시간을 주 64시간으로 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지영 고용부 임금근로시간과장은 "현장 의견을 들어봤을 때 11시간 연속휴식을 의무화하면 지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많았다"라며 "중요 발표나 신상품 출시, 급한 업무가 있을 때 11시간 연속휴식을 지키면서 연장근로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현재 산재판정 시 '과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4주 평균 64시간이란 점을 근거로 "검토 중인 방안은 건강권 보호를 위해 진일보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노동계에서는 즉각 날 선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유일한 조치마저 포기한 것"이라며 "주 55시간을 장기간 노동의 기준으로 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발표를 감안해도 시대역행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단순 계산 시 3일 동안 약 8시간만 쉬면 64시간을 내리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기술(IT) 업계의 잇따른 과로사 원인으로 지적된 '크런치 모드'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유준환 위원장은 토론회에서 "우리가 40시간 일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보니 이게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토론인지 의문이 든다"면서 "건강권에 대해 '기업이 더 엄격한 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내용 외엔 대책이 없는데, 반대로 말하면 건강권만 침해하지 않으면 노동자에 대한 별다른 보호책이 없다는 것으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고용부의 근로시간 총량관리제는 입법 사항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야당 동의 없이는 시행이 불가능하다. 이 과장은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내달 초 대책을 발표하고 입법예고할 예정"이라며 "현실적으로 대부분 기업은 52시간 내 운영되지만 일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업장도 있는 만큼 극단적 상황만 가정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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