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화제다. 주인공은 강남 학원가에서 손꼽히는 일타 수학 강사와 고등학생 딸(조카)을 공부시키는 반찬가게 사장이다.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며, 두 남녀의 애정 전선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제목이 스캔들이어서 일타 선생이 미모의 고등학생과 혹시나 부적절한 관계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며 가슴을 졸였는데, 어른들 사이의 적절한 연애로 확인되자 마음 편하게 시청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일타'는 '1등 스타'의 줄임말로 풀이된다.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에 쳐보니, '일타'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한다. '한 번에 쳐서 이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한 번에 올인하는 자세로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사람을 뜻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처음 들어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챗GPT에 나(의사 오흥권)에 대해서 쳐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막 지어서 소설을 쓰는 것을 보고, 신뢰도가 급감했다. 아직은 인공지능보다는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의 철저한 사전 조사를 더 믿기로 했다.
인공지능이 알지 못하는 내 과거의 꿈은 수학 선생님이었다. 냉철한 눈매와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순식간에 칠판 하나를 가득 채우는 놀라운 명석함을 가진 인기 만점 선생님. 하지만 고3 입시에서 낙방하여 꿈을 접고 재수를 하게 되었다. 학원 입학을 위해 무려 3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간 그곳에는 과연 빼어난 선생님들이 즐비했다. 몇 년의 학교 교육을 통해서는 잘 이해를 못 하고 겨우 외우기만 했던 지식들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근본부터 설명해주셨다. 내 인생에서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었던 적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컴컴한 동굴 안에서 길을 모르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서 밝은 등불을 들고 나를 따라오라고 외치는 고매한 사람보다, 바로 옆에서 등불로 발밑을 비춰주며 넘어지지 않게 해주는 사람이 학생 입장에서는 선생님으로 불릴 자격이 있을 것이다. 자기의 잘남을 소리치기보다는 남의 어려움을 헤아려주는 공감 능력. 빼어난 선생님들은 학생이 무엇을 모르는지, 또 무엇을 어려워하는지를 정확하게 꿰고 있다.
얼마 전에 전문의 고시가 있었다. 일하느라 따로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선생 된 자의 노파심으로 전공의들을 모아 족집게 과외를 해줬다. 문제집에 있는 이런 저질 문제 말고, 나 같으면 이런 문제를 내겠다고 즉석에서 응용문제를 던졌는데, 용케도 비슷한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들었다. 일타 선생이라도 된 듯 으스댔지만, 나는 안다. 200문제 중에서 1문제 정도 찍는 것이야 2타, 3타도 가능한, 얻어걸린 행운이라는 것을. 수년 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300명 정도의 외과 전문의가 배출되었다. 외과를 지망하는 의사들이 줄고 줄어, 올해는 겨우 138명의 외과 전문의가 나온다고 한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 비해 수술할 의사가 이렇게 비대칭적으로 줄어도 괜찮은 걸까? 챗GPT는 '환자들이 수술받아야 하는 시점을 놓침으로써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며, 그 결과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나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심화되어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도 믿기 싫지만, 일타 강사가 아니어도 설명할 수 있는 자명한 논리 구조라는 것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