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에는 '독이 든 당근'...50조원 규모 미국 반도체 보조금

입력
2023.02.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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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 390억 달러 보조금 신청 28일부터 접수
보조금 받으면 향후 10년 중국 반도체 공장 투자 제한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통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부담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28일(현지시간)부터 390억 달러(약 50조 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 신청을 받는다.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상이다. 하지만 미국 보조금이나 세액공제 지원을 받으면 향후 10년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시설 투자를 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와 함께 중국 견제 방안을 단단히 준비한 미국의 ‘독이 든 당근’ 때문에 한국 기업과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법, 보조금 주되 중국 견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23일 워싱턴 조지워싱턴대 강연에서 “다음 주 화요일(28일)부터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며 “기업들이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 발효한 ‘반도체ㆍ과학법’은 반도체 제조ㆍ조립ㆍ시험ㆍ첨단 패키징 및 연구개발(R&D) 시설투자를 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5년간 390억 달러가 투입된다. 또 반도체 제조장비 구매와 시설투자에도 25% 세액공제를 제공하기로 했다. 세액공제 역시 10년간 240억 달러의 지원 효과가 예상된다.

미 상무부는 프로젝트당 최대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텍사스주(州)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삼성과 반도체 연구개발센터, 첨단 패키징 공장 등을 준비 중인 SK가 수혜 대상으로 꼽힌다.

문제는 보조금 지급 조건이다. 반도체법에는 보조금을 받을 경우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담겨 있다. 중국이 미국 보조금으로 혜택을 보는 일을 막겠다는 의도다. 이전 범용 반도체 생산 시설은 투자 제한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해당 기업의 중국 내 첨단반도체 제조 길이 막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 반도체 출하량 중 40%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전체 D램의 절반 정도를 중국 우시 공장에서 만든다.

러몬도 장관은 “반도체 기업의 계획이 미국 정부의 국가안보 목표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결정될 것”이라며 “다들 인텔이 얼마를 받을지, 삼성전자는 얼마를 받는지 궁금하겠지만 (보조금 액수에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법 가드레일 규정 세부 지침은 3월 초 발표된다.

중국 첨단 반도체 생산 저지가 목표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출통제 조치도 부담이다. 삼성과 SK는 지난해 10월 조치 발표 당시 1년 동안 장비 수입이 포괄적으로 허용됐지만 유예 조치가 언제까지 연장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기술 수준을 제한하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이날 한국국제교류재단(KF) 주관 포럼에서 수출통제 1년 유예 후 방향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상한(Cap on level)을 둘 가능성이 크다”라고 답했다. 그는 “중국의 미국 위협 역량 구축 저지 과정에서 우리 동맹 기업들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라면서도 “중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지만 한국 기업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민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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