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2월 24일 이후 우크라이나인 야로슬라우 페레크호드코(27)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전쟁 전에 총을 만져 본 적조차 없던 그는 자원 입대해 1년 만에 숙련된 군인이 됐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사랑하는 배우자와도 이별했다.
22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만난 페레크호드코는 지난 1년간 벌어진 일을 담담한 목소리로 풀어놨다.
전쟁 전 페레크호드코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예술, 철학, 인권, 정치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 가면서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기대했다. 2020년 결혼한 배우자와의 생활도 달콤했다.
러시아는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키이우 출신인 페레크호드코는 침공 첫날 짐을 싸서 배우자와 함께 우크라이나 서쪽 도시 리브네로 피신했다. 안전한 곳에 배우자를 대피시켜 두고 입대하려 했다.
리브네에 도착하자마자 입대 원서를 냈지만 입대할 수 없었다. "리브네 지역방위군 입대 희망자가 밀려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는 답을 들었다. 침략군과 싸우겠다고 나선 우크라이나인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다.
페레크호드코는 지체하지 않고 키이우로 달려가 입대했다. 배우자를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몰랐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싸우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삶이 시작됐다.
페레크호드코는 키이우 외곽 도시인 이르핀에 배치됐다. 러시아가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며 짓밟은 도시다. 혈전이 벌어졌다. 3월 말 이르핀에서 러시아군이 퇴각할 때까지 페레크호드코는 죽기 살기로 싸웠다.
이후 하르키우와 돈바스로 연달아 재배치됐다. 모두 격전지였다. 페레크호드코는 러시아 민간 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살인 병기'라 불리는 용병들과도 싸웠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긴 건 셀 수 없다. 우리 전차 밑에서 (러시아군이 설치한) 폭탄이 터졌는데 간신히 살아남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사이 전우들이 무수히 죽어 나갔다.
교전이 벌어지지 않을 땐 러시아군의 정찰 드론을 감시했다. 막사도 관리했다. 초보 군인이었던 페레크호드코는 빠르게 베테랑이 됐다. 살아남으려면 뭐든 빨라야 했다. 리더십을 인정받아 부대 지휘관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는 "1년 전엔 내 직업적 커리어가 탄탄했는데, 이젠 군 커리어가 탄탄해지고 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페레크호드코는 전쟁 후유증을 얻었다. 전장의 폭발음에 무방비로 노출돼 생긴 이명과 난청이다. 그는 그러나 "작은 상처일 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페레크호드코는 얼마 전 키이우로 복무지를 다시 옮겼다. 미사일이 종종 떨어지지만, 러시아군과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동남부 전선에 비하면 안전하다. 배우자와도 재회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키이우에 있을진 알 수 없다. 다시 전장에 나갔다가 또 한 번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페레크호드코는 그러나 딱 하나만 생각한다고 했다. '승리'. 그는 "두렵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평화를 찾으려면 죽도록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사에 쓸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그는 전장에서 웃고 있는 사진만 골라 보내 줬다. 우크라이나가 이길 거라는 확신을 담은 웃음이라는 설명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