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장부 증빙자료 제출을 놓고 노동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부가 압박 수위를 한층 올렸다. 요구한 자료를 내지 않으면 국고보조금 사업에서 배제하겠다고 선포했다. 44억 원 규모인 보조금의 절반을 기존 양대노총이 아닌 신규 노동자 단체에 우선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23일 고용노동부는 '비정규직·미조직 등 취약근로자에 대한 지원 대폭 강화'와 '재정건전성 강화'라는 기조 아래 올해 '노동단체 지원사업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 이달 중 행정예고 등을 거쳐 내달 지원사업을 공고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원 대상을 기존 노동조합에서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체 등 기타 노동단체'로 확장했다. 보조금 중 절반인 22억 원가량은 신규 참여 단체에 우선 배정한다. 고용부는 "2021년 노조 조직률이 14.2%로 낮고 그마저 30인 미만 사업장 조직률은 0.2%에 그치는 등 노조가 대기업 중심이라 다수의 미조직 근로자 이해를 대변하는 단체의 참여가 어려웠다"며 "이번 개편으로 다양한 노동단체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업 내용도 원하청 근로자 공동교육이나 미조직 근로자 간 커뮤니티 구성·운영 등 취약근로자 권익보호와 격차 해소, 산업 안전 중심으로 개편한다. 그간 지원했던 노조 간부 교육, 국제교류 사업은 앞으로 노조의 자체 예산을 활용하게 했다.
지원 대상과 사업 내용을 충족하더라도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노조법상 비치·보존해야 하는 재정에 관한 장부·서류를 갖추고 있는지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해마다 내야 한다. 제출하지 않으면 지원사업 선정 때 배제된다. 고용부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고보조금 사업이라 회계가 투명한 단체가 수행해야 사업 목표를 달성하고 재정 낭비도 막을 수 있다"면서 "사업 주체가 요건을 충족하는지 확인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조금 정산보고서는 회계전문기관을 통해 검증한다. 강화한 사후 검증은 지난해 사용내역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검증 결과 부정수급이 확인되면 보조금을 환수하는 등 엄중 조치한다. 또 현장 점검을 실시하고 성과평가 결과와 다음 해 사업 선정 간 연계도를 강화, 부실 운영 단체는 사업에서 배제한다.
올해 지원사업 개편에 대해서는 회계 장부를 놓고 벌어진 양대노총과의 대립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327곳에 노조법상 비치·보존 의무가 있는 재정 관련 장부와 서류가 있는지 증명하는 증빙서류(표지·내지 1장씩) 제출을 요구하지만 노조의 63%(207곳)는 '자율성 침해'라며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즉 노조의 반발을 누르기 위해 보조금을 무기 삼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대노총은 지원금을 이용한 '노조 길들이기'라 판단해 사업 공모에 응하지 않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예산(35억 원)의 대다수인 29억 원을 지원받은 한국노총의 경우 이미 회계감사를 실시해 성실하게 보고하고 있어 회계를 불투명하게 관리한다고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원받는 금액이 적은 데다가 안 받아도 그만"이라며 반발했다.
실제 시행된다 해도 효과는 미지수다. 국고보조금에 대한 지침일 뿐 지방자치단체 지원금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지 알 수 없어서다. 한 노동 전문가는 "지자체 사업은 지역 내 노동자를 위한 사업이 많아 쉽게 지침을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지원금 규모도 지자체가 더 많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양대노총은 2018~2022년 고용부로부터 177억 원(11.6%), 지자체로부터 1,344억 원(88.4%)을 지원받았다. 복수의 지자체 관계자는 "내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