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엔터테인먼트의 초기 모델로 꼽히는 기획사는 바로 일본 남자 아이돌 시장의 개척자인 쟈니스 사무소다. 연습생 시스템 도입부터 수년에 걸친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 ‘SM 루키즈’까지, 사업 구상의 토대에는 쟈니스가 있었다.
J팝의 기둥이자 SM의 영감이었던 쟈니스는 수년 사이 위기를 겪었다. 대표 그룹이던 스마프(SMAP)는 내홍 끝에 2016년 해체했고, 유명 그룹 아라시도 2020년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그룹 킹앤프린스 멤버 3명마저 돌연 탈퇴를 선언했다. 업계 최정상을 유지하다 휘청이는 지금의 SM과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
쟈니스와 SM의 가장 큰 공통점은 기업 성장에 창립자의 영향력이 지대했다는 것이다. 쟈니스의 창립자인 쟈니 기타가와는 1962년 야구단 남학생 4명을 보이그룹으로 데뷔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고 히로미 등 스타를 배출했다. 또한 스마프, 아라시 등 전설적인 그룹을 탄생시키며 일본 아이돌 시장 정상에 올랐다. 국내 아이돌 1세대를 열고 4세대까지 손수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업계 1인자에 올랐던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오너 자리에 쟈니의 가족을 앉히며 폐쇄성 짙은 경영을 고수해온 쟈니스는 최근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수익 모델이 음원 스트리밍으로 전환될 때도 쟈니스는 CD・DVD 사업을 고집하는 등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 다른 기획사들에 따라 잡힌 것이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전문성이 부족한 가족 경영을 두고 대중 사이에서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고 말했다.
SM 역시 이 전 총괄의 처조카가 대표이사직에 오르는 등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했다. 이성수 SM 대표가 '쇄신'을 선언했지만 진정한 쇄신이 가능할지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성 평론가는 “쟈니스는 비상장 회사지만, SM은 엄연한 상장 회사인데 사실상 가족재벌과 다를 바 없는 운영 방식을 취해왔다는 점에서 사안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괄의 퇴진이 SM에 호재가 될는지도 확신할 순 없다. 성 평론가는 “2019년 쟈니 사망 이후, 쟈니스 오너 일가에 대해 ‘낡았고 보는 눈이 없다’는 비판이 가속화됐다”며 “실력이 좋았던 창업자가 물러난 후 기업이 예전만큼의 위상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양국 굴지의 기획사가 위기에 처한 건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견제 세력 없이 한 기획사가 장기간 업계를 독식한 기형적 형태는 결국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는 “쟈니스의 독점에 대한 반감은 꾸준히 존재했지만 그간 저지할 길이 없었다”며 “다른 기획사의 성장 등을 계기로 이제야 쟈니스의 독식 구도가 깨지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정 회사의 장기적인 독점은 결국 문화 콘텐츠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고, 시장에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