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사건이슈팀장이 되고 나서 처음 쓴 칼럼의 제목이 '정말 국기 문란입니까'였다. 정부가 경찰 고위직인 치안감 인사를 발표했다가 불과 2시간여 만에 번복하는 초유의 사태를 다룬 글이었다.
사건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은 없어진) 출근길 인터뷰에서 "중대한 국기 문란이 아니면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어이없는 과오"라며 '격노'했다. 언론 보도까지 이뤄진 인사가 뒤집어진 배경을 두고는 "경찰에서 행정안전부로 자체적으로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을 해버린 것"이라며 경찰을 질책했다. 반면 경찰 조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청와대나 행안부의 뜻을 거스르는 인사안을 발표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의 발언은 경찰국 신설로 야기된 새 정부의 '경찰 장악' 프레임을 '인사 쿠데타'로 전환하려는 의중으로 비쳤다.
결과적으로 경찰 잘못은 없었다. 국무조정실 조사를 통해 행정안전부로 파견된 치안정책관이 최종안 대신 이전 단계의 검토안을 경찰청 인사담당관에게 잘못 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애초 경찰청의 해명대로였다. 치안정책관은 징계를 받았고, 인사 조치됐다. 경찰청의 인사·홍보담당관(총경)도 각각 직권 경고 처분을 받았다. 징계 사유에 이르지 않지만 내부 협의를 성실히 하지 않은 과오로 언론 혼란을 일으켰다는 이유였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대통령이 경찰 조직을 정면으로 겨냥했는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으니 적당한 이유를 붙여 징계 시늉만 냈다. 총경 두 명 중 한 명은 얼마 전 경찰 고위직 인사에서 '경찰의 별'로 불리는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문책성 인사를 당했던 나머지 한 명도 본청의 핵심 보직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며 '영전'했다.
분노에 찬 대통령의 발언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셈이지만 대통령실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한참 전에 벌어진 일을 되살펴보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반면 '국기 문란'이란 무시무시한 단어의 효과는 톡톡히 봤다. 전임 정권이 임명했던 당시 경찰청장은 임기를 한 달 앞두고 물러났고, 경찰 조직은 납작 엎드렸다.
최근 대통령이 건설현장의 폭력을 '건폭'이라 지칭했다. 일부 노조의 불법행위를 조폭(조직폭력)과 학폭(학교폭력), 주폭(주취폭력)과 다름없다고 인식하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을 보며 반년 전 국기 문란 사태가 머릿속에 다시 소환됐다.
당장 노조와 시민단체는 하도급 위반 같은 사측의 불법 행위는 애써 외면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노조의 회계장부 제출 거부도 따져볼 부분이 적잖다. 정부 보조금은 매년 감사와 보고가 이뤄지고 있으며, 노조가 회계장부까지 정부에 제출할 의무가 있느냐에 대해선 법률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보인다. '건폭'이란 신조어가 모든 논란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해서다. 이번 발언 역시 '노조 때리기'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겠단 계산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른다.
대통령의 말은 그 자체로 정치다. 자신의 언어를 국민을 설득하고 하나로 모으는 결집의 도구로 써도 모자랄 판에 정반대로 갈라치기하고 지지층만 결속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