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개고기 수요 감소로 맛과 조리법이 비슷한 염소 고기가 대체제로 부상하면서다. 국내 염소 사육 두수가 갑자기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당분간 염소값은 고공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25일 한국흑염소협회에 따르면, 이달 13일 기준 전국 산지 염소값은 1㎏에 거세 염소 2만1,500원, 비거세 및 암염소 1만9,000원이다. 1㎏에 1만7,000원대를 기록했던 1년여 전과 비교하면 26% 가까이 올랐다. 가격이 오르기 전인 2년 전(2021년 7월 1㎏ 1만3,000원)과 비교하면 65%나 오른 셈이다. 고기용 염소 한 마리 무게가 60~70㎏ 나가는 점을 감안하면, 마리당 150만 원꼴이다.
'염소파동'이 일어난 2018년. 상당수 염소사육 농민들은 1마리당 16만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고 폐농했다. 당시 염소 1마리 시장가는 10만~15만에 불과했다. 불과 5년 만에 최고 10배 이상 오른 셈이다.
염소값 인상에는 개 식용 금지 여론 확산에 따른 정부 차원의 조치가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9월, 개 식용 금지 방안을 검토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같은 해 12월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개 사육농가와 음식점 등에 대한 실태 조사가 추진됐고, 불법 도축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경기 성남 모란시장과 대구 칠성시장 등 과거 개고기로 유명했던 시장들조차 폐업이나 전업 가게가 잇따랐다. 경북지역 한 지자체 관계자는 “개 식용 금지 여론은 오래됐지만, 1년여 전부터 정부가 단속을 강화하면서 개고기 판매업체가 타격을 입었다”며 “그러면서 대체제로 염소 고기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보양 음식점 관계자도 “최근에는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이 많다 보니 보신탕보다 염소탕 등 다른 보양식을 찾는 이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염소 고기 수요는 늘었지만 정작 국내 염소 고기 공급은 감소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염소 사육 두수는 2019년 57만2,305마리에서 2021년 44만3,000마리로 23% 가까이 줄었다. 염소사육업계는 2018년 염소 고기 수입 증가에 따른 염소값 폭락으로 정부가 염소 농가 폐업 지원에 나서면서 급감한 사육 두수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염소 농가는 2015년 9,484곳에서 2020년 7,273곳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사료값이 오른 것도 사육 두수 감소를 가속화시켰다. 업계에서는 올해 사육 염소 수가 40만 마리 이하를 밑돌 것으로 추정한다.
염소값 고공행진에도 사육 농가는 울상이다. 염소는 1회 두 마리, 1년에 두 번 출산하는 다산 가축에 속한다. 하지만 소나 돼지처럼 표준화한 사육법이 없어 사육이 까다로운 가축으로 꼽힌다. 김광원(62) 영양일월산흑염소회장은 “8년 전부터 염소를 키우는데 새끼 폐사율이 높고, 사육 비용이 많이 들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라며 “늘어난 수요를 맞추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오히려 가격이 높아 수요가 줄어들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염소 유통업체 등도 염소값 급등에 난색이다. 염소엑기스 등을 판매하는 대구 칠성시장의 한 건강원 대표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약용 염소(30~35㎏) 한 마리에 30만~4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90만 원에 거래된다”며 “가공 비용까지 더하면 150만 원이 넘어 염소엑기스를 찾는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 보양음식점 관계자도 “염소 가격은 올랐지만, 음식 가격은 그대로여서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소나 돼지처럼 염소 사육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인규 한국흑염소협회 사무총장은 “과거에도 염소값이 오르면 너나 할 것 없이 염소 사육에 뛰어들면서 가격이 폭락하는 등 혼란이 있었다”며 “정부가 염소도 소나 돼지처럼 이력관리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