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그리는 화가로 이름이 알려진 정주영 작가가 하늘 그림 연작으로 돌아왔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낸 작품들이다. 자연 현상을 직접 보고 신체의 일부분을 연상하면서 그렸지만 해석은 열려 있다. 작가 스스로 “또 다른 상상이 들면 더 좋다”면서 “그림이라는 것은 오래 보고 매번 해석하고 감상하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년 넘게 산을 그려온 정 작가의 개인전 ‘그림의 기후 Meteorologica’가 이달 15일부터 다음 달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기상학’에서 따온 제목이다. 하늘을 그린 연작의 제목이 M으로 시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작가는 “이전에는 신화의 영역에서 그것(기상)들을 다뤘다면, '기상학'은 인간이 그것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것으로 기록했던 고대의 책”이라고 설명했다. 작가 자신이 기상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 방식과 같은 방식이다.
전시장은 지하와 지상 1층, 2층으로 꾸며져 있다. 지하 공간에서는 알프스 돌로미티 지역 풍경을 그린 알프스 연작들이 주로 전시돼 있는데 층을 올라갈수록 관람객의 시야는 하늘 쪽으로 올라가도록 작품들을 배치했다.
1층에는 일몰이나 달이 뜬 하늘을 담아낸 그림들이 걸려 있다. 전시의 백미는 지상 2층 전시장에 걸린 ‘M40’과 ‘M41’이다. 두 그림은 작가가 거대한 먹구름이 뒤덮인 하늘을 보면서 인체를 연상한 이후 그린 그림이다. 작가는 가장 장엄한 풍경으로 일몰을 소개하고 “아주 평범하고 반복되는 것이지만 아주 뚜렷한 울림을 준다고 생각해서 그렸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전시와 달리 색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작가는 하늘은 선으로 그려낼 것이 없는 공간이기에 자연스럽게 색에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물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가 자신도 자신의 작품이 추상화인지 구상화인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작가는 “형상을 보면서 화가가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상상력이 있는 반면 경계가 없는 것을 표현하는 화가의 상상력도 있다”면서 “그것을 우리가 추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전시된 그림들은 유화 물감과 캔버스를 활용하는 서양화 기법으로 그려졌지만 인상은 동양화를 닮았다. 작가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유화 물감은 보통 굉장히 두껍고 질감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저는 수채화처럼 얇고 투명하게 굉장히 여러 번 겹쳐서 그린다”면서 “사실 그린다는 생각보다는 그린 것을 지운다는 생각이 들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