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경북·전북 등 3도를 품은 민주지산에 둘레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놓고 지역주민과 환경단체가 “환경 파괴”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22일 충북 영동군과 주민들에 따르면 군은 2020년부터 5억 원을 들여 민주지산 물한계곡 둘레길 조성을 골자로 하는 ‘물한2리 산림휴양치유마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산림청 공모에 선정돼 추진한 이 사업은 현재 공사를 거의 마무리짓고 개장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불필요한 사업에 혈세만 낭비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에 둘레길을 개설한 황룡사~옥소폭포(1.8㎞) 구간에는 이미 버젓한 등산로가 있기 때문에 새 길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군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땅을 깎아내고 나무를 베는 등 생태 환경을 파손했다. 특히 일부 구간은 낭떠러지로 방치돼 산사태 위험까지 커진 상황이다.
이장 김선도씨는 “너비가 5m도 안 되는 계곡 반대편에 혈세를 퍼부어 새 길을 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무분별한 사업 때문에 생태자연 1등급인 계곡이 파괴되고 사고 위험은 커졌다”고 당국을 성토했다.
영동군이 기존 등산로 정비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논란이다. 주민들은 기존 등산로에 설치된 낡은 나무 다리를 안전하게 개량해달라고 수년 전부터 요구했지만, 군은 예산 타령을 하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김 이장은 “주민과 관광객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 보수에는 눈을 감은 군청이 정작 필요도 없는 새 길 조성에는 혈안이 된 꼴”이라고 꼬집었다.
주민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둘레길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왜곡됐다는 점이다. 김 이장은 “애초에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만들고 중간에 쉼터와 물놀이장, 물레방아를 설치해 관광객을 유치한다기에 도장을 찍어줬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도중에 계곡을 낀 등산로 조성 사업으로 둔갑해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 초기 코로나19 때문에 주민 모이기가 어려워지자 추진위원단을 구성했었다. 소수의 추진 위원을 등에 업고 군이 사업을 밀어불인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지역 환경단체인 ‘민주지산환경산림하천지킴이’(민주지산지킴이)는 원상 회복과 추가적인 둘레길 사업 백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동군에 대해서는, ‘산림파괴’ ‘예산낭비’ 등을 들어 농림부와 산림청에 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영동군의회에 행정사무 감사도 요구할 참이다.
민주지산지킴이는 물한계곡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하수처리시설을 설치해줄 것과 계곡 일원을 상수도보호구역을 지정해줄 것을 당국에 촉구했다.
박일선 충북환경연대 대표는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물한계곡이 불필요한 둘레길 공사 때문에 철저히 파괴된 현장을 보고 경악했다”며 “이제라도 전면적인 감사 등을 통해 ‘보여주기 행정’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동군은 주민들의 이의 제기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개장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진상백 군 산림과장은 “사업은 마을 주민의 동의를 얻어서 추진한 것”이라며 “사업 초기라면 여러 의견을 참고해 사업을 재검토해보겠지만, 지금은 마무리 단계라 그럴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우려하는 점을 잘 안다. 환경을 살리면서 관광 활성화도 꾀하는 주민 상생 방안을 강구하겠다. 둘레길은 3월말 개장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