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거스르는 정부의 석유가격 정책

입력
2023.02.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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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주유소 소매가격을 매일 발표하고, 정유사별 판매가격도 매주 공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상품가격 정보 공개다. 그럼에도 정부가 가격경쟁 촉진과 유류세 인하분 즉각 반영이라는 명분하에 석유제품 도매가격 공개 확대를 강행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정유사 공급가는 지난 20년간 정부와 시민단체의 엄격한 감시하에 공정시장가격룰(Glabal Standard)에 의해 결정돼 왔다. 그에 따라, 정유사는 싱가포르 국제 현물가격에 현재 리터(L)당 40원 내외의 공급비용만 추가한 채, 각종 세금이 더해진 가격으로 주유소 등에 제품을 판매한다. 국내 수송 인프라 발전으로 L당 40원의 공급비용은 국제적으로 저렴한 수준이다. 덕분에 지난해 우리나라 휘발유와 경유의 세전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85% 수준에 있다.

공정가격 룰 준수는 기업 입장에선 버거운 선택이다. 지난 16년간 정유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타 산업의 절반 이하인 2% 수준에 머문다. 정유사 도매가격이 수송 거리나 입지, 저장고 상황에 따라 지역별로 편차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정유사 지역 영업팀 혹은 대리점이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해, 지역 내 주유소 고객에 대해 시설이나 자금을 지원하고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비용도 여기에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매 가격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기게 된다. 도매가격 항목이 마케팅 과정에서 협상의 지렛대이자 계약 과정의 내밀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이유다.

이런 정보의 공개는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경쟁사의 지역별 석유제품 한계비용 공개는 우월한 지위의 정유사로 하여금 짧고 손쉬운 초기 경쟁단계를 거쳐 시장지배력을 키운 후 가격을 올림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게끔 만든다. 정유사간 지위가 엇비슷한 경우에는 경쟁 대신 최고 가격 수준을 공동으로 유지하면서 이익을 꾀하는 암묵적 담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대리점의 도매가격 수준이 노출된 상황에서 주유소와의 협상이나 계약은 상당히 소모적인 과정이 된다. 평균 원가가 공개된 상황에서 개별 상황에 의해 불가피하게 소매가를 높게 유지하는 주유소들은 소비자들의 눈초리나 외면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유류세 인하 시 종전 재고의 소진까지는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데도 악덕업자 누명이 씌워질 수 있다. 산업부 희망대로 기름값을 더 낮춘다면, L당 100원 내외의 매출이익에서 2% 남짓 영업이익률로 근근이 연명하는 주유소들의 폐업률(현재 연간 4%)이 머지않아 두 자릿수대를 기록할 수도 있다. 소비자에게 월 5,000원 내외의 편익을 제공하기 위한 대가치고는 경제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