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도 '챗GPT 홀릭'...서비스 시작도 안 했는데 접속 폭주

입력
2023.02.21 21:00
VPN 등 이용해 우회 경로 접속
베트남 내 100만 명 이용 추정
시스템 과부하, 로그인 막히기도

“컴퓨터 인터넷 프로토콜(IP)을 변경하는 비주얼베이직(VB)6 코드를 알려줘.”

21일 베트남 엔지니어 응우옌찌에우(29)가 챗GPT에 이같이 입력한 뒤 확인 버튼을 누르자 10초도 안 돼 화면에 복잡한 컴퓨터 코드가 펼쳐졌다. ‘이 코드에서는 TCP/IP 함수를 사용해 컴퓨터 IP주소를 변경한다’는 친절한 설명도 함께였다.

찌에우는 “직접 코딩한다면 몇 시간 걸릴 결과물을 1분도 안 돼 볼 수 있다”며 “요즘 친구들끼리 만나면 챗GPT 얘기밖에 안 한다. 정보기술(IT)뿐 아니라 일반적인 인터넷 검색, 영어 번역까지 모든 분야에서 이용할 정도”라고 말했다.

VPN 이용하고 ‘웃돈’ 주고 계정 구매

전 세계를 뒤흔든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열풍이 베트남에서도 거세게 분다. 베트남에서는 아직 공식 서비스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청년층은 물론 언론과 교육 당국까지 주목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21일 베트남에서 챗GPT 계정을 만들려 하니, "해당 국가에선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다. 베트남은 개발사인 미국 스타트업 ‘오픈AI’가 중국, 러시아와 함께 아직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은 국가인 탓이다.

이 같은 장벽이 챗GPT에 대한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베트남인들은 계정을 만들기 위해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IP주소를 해외로 변경하고 △해외 가상 전화번호를 생성해 인증받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 같은 과정이 귀찮은 이들은 2만~10만 동(약 1,100~5,500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다른 사람의 챗GPT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얻어 서비스에 접속한다.

베트남 내 정확한 이용자 수는 집계되지 않았다. 현지 매체 베트남넷은 인구 1억 명 가운데 1% 수준인 100만 명이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해외 IP를 우회한 가입자가 많은 만큼 추산이 쉽지는 않다.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베트남에선 올해 들어 챗GPT에 대해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이 수십 개 생겨났다. 가장 큰 커뮤니티에는 5만 명 이상이 가입했다.

해당 그룹 운영자이자 베트남 유명 전자상거래 관리 AI 스타트업 ‘에콤키 옴니채널’의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카오반한은 20일 한국일보에 “베트남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배우는 데 매우 유연하고, 변화에 대한 욕구도 크다”며 “베트남의 챗GPT 사용자 수가 세계 10위권 안에 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때 사용자가 폭주하면서 “시스템 과부하로 접속이 불가하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로그인이 지연되기도 했다.


교육부 “챗GPT 지원 관리 정책 개발”

시장이 뜨거워지자 현지 언론 역시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낸다. 주요 매체들은 매일같이 챗GPT의 발전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기사를 보도한다. 호찌민 방송 채널 HTV9는 뉴스 대본을 챗GPT를 이용해 만들면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취재진이 ‘베트남의 AI 기술 관련 기사’를 쓴다고 검색어를 입력하자 챗GPT는 현재 기술 현황 등 주요 내용을 단락별로 나누고, 전문가 인터뷰를 삽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도 내놨다. 해당 방송사 기자 응오쩐틴은 “챗GPT가 작성한 기사는 1, 2년 차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아주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시청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긴 충분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 역시 챗GPT가 가져올 미래에 주목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SGGP에 따르면, 교육훈련부는 이달 13일 호찌민에서 ‘챗GPT의 교육 기회와 도전’ 세미나를 열고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호앙민썬 차관은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제공자에서 지식 검색 컨설턴트로 바뀌고 있다”며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챗GPT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게 (정부의) 임무”라고 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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