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이 민법상 인정받지 못해도 행정법상 사실혼 부부와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판단이 남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도약할 시금석이 마련됐다고 할 만하다.
21일 서울고법은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승소 판결했다. 소씨는 동성인 김용민씨와 ‘동성결혼’을 했지만, 남녀 부부와 달리 건보공단은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행정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국민을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행정기본법 9조)으로 이번 사건을 의율했다. 재판부는 이 조항을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또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소수자는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 없다”며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민법상 동성결혼은 인정되지 않지만, 이번 판결은 그런 원칙에서 파생된 행정적 차별을 제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동성 커플들은 사실상 가족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나 상속, 연금부터 수술 동의서에 이르기까지 ‘부부’나 ‘가족’에게 부여되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세계는 동성혼을 인정하는 추세다. 선진 주요 7개국(G7)은 일본만 빼고 모두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아시아에서 대만이 2019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으며, 일본 국민들도 72%가 동성혼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한국은 동성혼에 대해 개신교인 19.9%, 비개신교인 42.3%가 찬성한다는 결과를 볼 때, 훨씬 보수적이다. 하지만 성소수자 차별 금지는 다수결에 끌려가서는 안 되는 인권 문제이며, 이번 판결은 그 점을 환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