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제20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가 열렸던 강원도 평창에서는 오래 기다렸던 ‘젊은 에이스’가 탄생했다. 올해 고교 2학년이 되는 17세 소녀가 성인들도 힘겨워하는 노르딕스키에서 4관왕에 오른 것이다. 대회 최우수선수(MVP) 투표에서는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까지 제치고 생애 첫 MVP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국내 장애인 체육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온 주인공은 김윤지(서울 가재울고 2년)다.
이번 대회 김윤지의 약진은 어느 정도 예고됐다. 지난해 동계체전에서 신인왕(노르딕 3관왕)을, 하계체전에서도 신인왕(수영 3관왕)에 오르며 국내 최초로 ‘같은 해 동ㆍ하계 장애인체전 신인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썼다. 김윤지는 최근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작년 동ㆍ하계체전에서 3관왕씩 하고 이번엔 4관왕을 했다. 한걸음 더 발전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성적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오빠와 동생, 할머니까지 온 가족이 모여 응원을 보내줘 더 뜻깊었다”라며 가족을 향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김윤지는 선천적 척수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장애 등급은 지체장애 중급단계인 LW11. 김윤지는 “상체 활동은 거의 자유롭지만, 무릎 아래 기능은 많이 떨어지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3세부터 재활 훈련 목적으로 수영을 시작해 휠체어레이싱을 거쳐 동계 설상 종목인 노르딕스키까지 반경을 넓혔는데 노르딕스키에서 특별히 남다른 성과를 냈다. 김윤지의 재능을 눈여겨보던 이승복 서울 노르딕팀 감독이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 보자”며 엘리트 스포츠를 권유했다. 하지만 재활 스포츠와 엘리트 스포츠의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김윤지는 “처음엔 근육통이 너무 심하고 힘들었다”면서도 “그래도 활동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선수 훈련이 신기하다. 최대한 재미있고 긍정적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한다”라며 웃었다.
겨울엔 노르딕 스키, 여름엔 수영이다. 두 종목 모두 굉장한 근력과 끈기를 필요로 하는 힘든 종목이다. 김윤지는 그러나 “두 종목 모두 힘들여 노력한 만큼 앞으로 나아가고, 빨라지고, 결과가 나오는 묘한 매력이 있다”면서 “또 스피드와 파워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점도 내 성격과 맞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국제 무대에 출전해 보다 넓은 시야와 경험을 조금씩 쌓고 있다. 특히 첫 국제대회였던 지난해 11월 핀란드 FIS 파라노르딕스키 부오카티 월드컵에서 메달 4개를 휩쓸었다. 그는 “체력적으로, 기술적으로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면서 “또 크고 다양한 코스 등 대형 시설들도 부러웠다”라고 돌아봤다.
좋아하는 선수로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노르딕스키 좌식 2관왕인 켄달 그렛쉬(미국)와 2014 소치 동계패럴림픽 바이애슬론 여자 10km 좌식 금메달리스트 안야 비카(독일)를 꼽았다. 김윤지는 “켄달은 턴 기술이 너무 멋있고, 안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모습이 멋있다”라며 팬심 섞인 웃음을 보였다. 국내 노르딕스키계 ‘터줏대감’ 신의현도 ‘최애 명단’에서 빠질 수 없다. 이번 동계체전에서도 경기 전 코스를 함께 돌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신의현 삼촌과 정대석, 원유민 등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선배들이에요.”
목표는 장애인스포츠 최고 무대인 패럴림픽이다. 이를 위해 오는 3월 1일 개막하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FIS 파라노르딕스키 솔져할러우 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룬다. 당장 좋은 성적이 예상되진 않지만, 지금부터 꾸준히 기량과 경험을 쌓아 3년 뒤인 2026 밀라노·코르티노 동계패럴림픽에선 김윤지라는 이름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겠다는 각오다. “아직 기술과 경험이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 아직 젊잖아요. 게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집중력은 제 장점이거든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할 거예요. 제가 커가는 모습 많이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