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대단한 일한 거 아닙니다. 억울하게 돈 못 받았다고 하면 돈 받아 준 거죠. 그 사람들 고향에 가족이 한 20명씩 딸려 있거든요. 가족 20명이 굶는다는데 어떻게 안 도와줍니까.”
겸손한데 거침없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춘다. 경기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화성센터)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무료로 법률 상담을 해주는 한윤수(75) 목사가 지난 20일 수기집 ‘오랑캐꽃이 핀다’(박영률출판사 발행)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15년 8개월째 아무 요구 없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일을 도왔다. 그래서 별명이 두 개다. 얌전하게는 ‘이주 노동자들의 대부’, 솔직하게는 ‘떼인 돈 받아 주는 목사’.
한 목사는 책에서 월급 떼이고, 퇴직금 못 받고, 성희롱당하고, 폭행당하거나 부당 해고된 사례 895개를 엮어 냈다. 2023년의 한국이 맞나 싶어 얼굴이 찌푸려지다가도, 그런 핍박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웃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외국인 200만 시대에 그들 삶에 관한 기록이 우리나라에 없다. 비록 내가 머리는 안 좋아도 그들이 맞닥뜨린 리얼한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가령 ‘원탁의 태국인’에서 나온 얘기는 이렇다. “상담하기 제일 힘든 민족이 태국 사람들이다. 태국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무리 지어 오는데,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지리산가리산 지껄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상담이야 어찌 되든 자신의 모국어로 마음껏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 우물가나 사랑방에서 벌어지던 풍경이 꼭 이렇지 않았던가.”
‘삼디돈말결’ 같은 말도 한 목사가 현장에서 건져낸 단어다. 그에 따르면 업계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이유를 '삼디돈말결' 때문이라고 한다. 힘들고(difficult)ㆍ더럽고(dirty)ㆍ위험한(dangerous) 일을 하지만 돈은 적게 줘도 되고, 말(불평)도 없고, 결근도 없다는 뜻. 한 목사와 같은 이들의 노력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가 조금씩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외국인 노동자들 대상 임금체불 금액은 매년 1,000억 원에 달한다.
한 목사는 떼인 돈을 받아 주기 위해 사장과 담판을 짓거나 고용노동청을 찾아가고, 재판도 불사한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29세에 출판사를 차렸다. 70, 80년대 운동권에서 유명한 ‘청년사’ 대표가 바로 그다. 10대 학생 노동자, 여공의 비참한 생활을 다룬 문집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을 펴냈고, 이는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복사본을 돌려볼 정도로 필독서가 됐다. 이후 그는 전두환 정권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됐다. 이런저런 사업을 전전했지만 망했고, 그의 말에 따르면 "빚쟁이한테 몰려 마지막으로 간 데가 신학교"다.
2005년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산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며 외국인 노동자를 처음 만났다. “새카만 얼굴로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데 1970, 80년대의 우리 10대 노동자 생각이 났다. 돈 떼이고 두들겨 맞는 것이 똑같았다”. 그길로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연고도 없는 화성에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를 세우고 무료 법률 상담을 시작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3번으로 제한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고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용주가 이 제도를 악용해 외국인 노동자를 노예 부리듯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소한 1년에 한 번 직장을 옮길 기회를 노동자들에게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