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콘도운영업체 아난티와 삼성생명 직원들이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수십억 원대 뒷돈을 주고받은 혐의를 포착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아난티가 부동산 매입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에 "삼성이 살 부동산"이라는 증빙서를 사용한 사실을 파악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이정섭)는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서울 강남구 콘도운영사 아난티 서울지사와 대표이사 A씨 및 전직 부사장 B씨 주거지, 삼성생명 본사와 전직 삼성생명 부동산사업부 직원의 주거지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A씨와 B씨는 형제 사이로, 아난티의 전신인 에머슨퍼시픽 창업주의 2세들이다.
검찰에 따르면 골프리조트와 호텔 등을 운영하는 아난티는 2009년 4월 500억 원을 들여 서울 송파구 일대 토지를 사들였다. 아난티는 이 과정에서 자금 조달을 위해 금융기관에서 수백억 원을 대출받았다. 아난티는 대출 과정에서 "삼성이 토지를 매입하기로 돼 있다"는 취지의 증빙서를 금융기관에 제시했다.
아난티는 토지 매입 두 달 뒤 삼성생명과 '준공조건부 판매 계약'을 했다. 아난티가 지상 17층 지하 7층 규모로 개발 예정인 부동산 소유권을 삼성생명에 넘기는 내용으로, 두 회사는 아난티가 최종 잔금을 납부하기도 전에 계약했다. 아난티는 삼성생명과의 부동산 거래를 통해 2009~2010년 970억 원을 벌어들였다. 토지 매입비와 비교하면 2배 가까운 차익을 남긴 것이다. 해당 건물은 2011년 준공 이후 현재까지 삼성생명이 사용 중이다.
검찰은 아난티가 당시 삼성생명 부동산사업부 직원들과 유착해 회삿돈 수십억 원을 뒷돈 명목으로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생명 직원들은 부동산 거래 직후 모두 회사를 그만뒀고, 한 직원은 자산운용사를 운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수사는 2019년 금융감독원이 아난티의 회계감리 중 발견한 허위 공시 정황을 검찰에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이후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아난티와 삼성생명 직원들 사이의 '검은 거래'를 파악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아난티 측은 이날 검찰 수사에 대해 "현재 상황 파악이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생명 측도 "부동산 사업을 담당하는 부서를 압수수색한 것은 맞다"면서도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인 상황은 파악이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