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간부가 반복적으로 ‘사표를 쓰라’고 말한 뒤 직원의 결근을 방치했다면 해고 의사를 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전직 버스기사 A씨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1월 한 전세버스 회사에 입사한 뒤 한 달여 동안 버스 운행 일정을 두 차례 펑크 냈다가 같은 해 2월 11일 관리팀장 B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팀장 B씨는 A씨에게 버스 키를 돌려받으며 “사표 쓰라”는 말을 7번 반복했고, “해고하는 것이냐”는 A씨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A씨는 이에 다음 날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A씨는 3개월 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회사는 그간 A씨를 방치하고 있다가 구제 신청이 들어오자 그에게 “해고한 적 없으니 복귀하고자 한다면 즉시 근무할 수 있다”고 통지했다. A씨가 3개월간 회사에 나오지 않은 것은 ‘무단결근’이란 취지였다.
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해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A씨의 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결과도 같았다. A씨는 이에 “복직 통보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싶다면 앞선 3개월 동안의 임금을 달라”는 내용증명을 회사로 보낸 뒤 법원에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관리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고, ‘사표 쓰라’는 발언은 화를 내다 우발적으로 나온 말”이라며 사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팀장 B씨가 당시 상무를 데리고 A씨를 찾아가 직접 버스 열쇠를 회수하고, 반복적으로 사표를 쓰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묵시적 해고’로 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키 반납을 요구하고 회수한 것은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사표 쓰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한 것은 A씨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봤다. 회사가 인력 부족으로 경영이 어려웠음에도 3개월간 A씨의 결근을 방치하다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 뒤에야 출근을 독촉했다는 점을 근거로 “대표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추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회사가 원고에게 서면으로 해고 사유 등을 통지한 적은 없으나 서면 통지는 해고 효력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일 뿐 의사표시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라며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