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피아를 막론하고 엄청난 인명피해를 만들어내고 있는 악명 높은 러시아 용병회사 ‘와그너그룹’. 이들이 언론을 통해 자주 언급되면서 이제 ‘민간군사기업(PMC)’이라는 용어는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와그너그룹이나 과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많은 범죄 행위를 일으켜 유명해진 미국의 블랙워터 등의 사례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PMC=용병’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사실 PMC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기업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다. 용병을 제공하는 기업은 ‘군사공급기업(MPF· Military Provider Firms)', 급식이나 세탁, 수송, 의료 등 후방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군사납품기업(MSF·Military Support Firms)’, 군사고문단의 역할을 하며 군대의 운영이나 훈련에 교관단이나 자문을 제공하거나 가상 적군 역할을 맡아 훈련 스파링 파트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사자문기업(MCF·Military Consultant Firms)’ 등. 모두 PMC라는 이름으로 통칭된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미국에는 이러한 PMC가 정말 많다. 우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본 것처럼 전투원을 보내 요인 경호·시설경비 등을 수행하거나 정보기관의 용역을 받아 사보타주(적의 비군사시설에 대한 공격행위)를 대신해주는 MPF가 있다. 그리고 미국 본토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들에게 식사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MSF도 셀 수 없이 많다. 눈에 띄는 점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MCF, 즉 군사자문기업이 미국의 거의 모든 주(州)에 있고, 대부분 성업 중이라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에는 ‘지상군 MCF’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 미국에는 어지간한 중견 국가의 공군력과 필적하는 전투기 전력을 보유한 회사들이 여럿 있다. 톱 에이스(TOP ACE)라는 업체는 F-16 전투기 29대, 유럽의 고등훈련기 알파젯 55대, 항공모함 함재기 A-4 스카이 호크 14대 등 98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톱 에이스는 최근 자사의 F-16 전투기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성능 개량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이 업체의 F-16들은 우리 공군의 KF-16 전투기를 가볍게 압도하는 수준의 성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일명 AAMS로 명명된 이 개량을 통해 이 업체 F-16들은 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더는 물론, 헬멧 장착 미사일 조준 시스템과 최신형 적외선 탐색 및 추적 시스템, 전자전 장비와 전술 데이터링크 시스템까지 갖췄다. 이 회사가 전투기 1대에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개량을 진행하는 것은 주요 고객인 미 공군·해군·해병대에 더 높은 수준의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들의 전투기 성능이 갈수록 향상되는 만큼, 훈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가상 적기들도 성능 향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군도 육·해·공군·해병대에 자체적인 전문 대항군 부대와 훈련장을 운영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돈을 들여 MCF와 계약을 하고 훈련을 하는 이유는 보다 실전적인 훈련을 위해서다. 한국군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고 유연한 소통 문화가 정착된 미군이지만, 훈련부대와 대항군이 모두 군인인 훈련만 반복하다 보면 전술·교리 발전이 지체되고, 급변하는 전장 환경의 요구를 그때그때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미군 수뇌부의 판단이다. 군대라는 집단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MCF는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기업이고, 이들에게 우수한 전술·교리는 곧 회사의 경쟁력이자 돈이다. 누가 전술·교리 개발과 직원 정예화에 더욱 적극적일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 MCF는 미군 현역 가운데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을 인정받은 군인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훈련용 전투장비에 엄청난 돈을 들여 첨단 사양으로 개량하는 데 열심일 수밖에 없다.
미군은 베테랑·엘리트 직원과 최신 장비를 갖추고 새로운 전술·교리 개발에 누구보다 열심인 MCF들과 모의 교전을 통해 깨지고 박살 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단련에 단련을 거듭하고 있다. 매일 전 세계에서 실전경험을 계속 쌓으면서도 외부 전문가들까지 동원해 자문하고 고강도 훈련을 자청하는 미군은 강할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 군대가 미군과 함께 훈련하기를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어느 나라도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군대처럼 많은 실전경험을 쌓을 수도, 막대한 돈을 들여 외부 자문과 훈련 서비스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그러한 과정을 거친 미군에 직접 한 수 배우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2016년, 해군과 해병대 등 일부 군에서 이른바 ‘연합 창끝(Combined Edge)’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소부대 단위까지 전투원을 교환 근무시키는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전광석화’처럼 끝났다. 군이 왜 이 프로그램을 종료했는지 명확하게 밝힌 적은 없지만, 한국군과 훈련을 해본 미군 간부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미군은 한국군과 연합훈련을 할 때마다 한국군의 문제점들을 종종 지적한다. 초급간부들이 지도를 읽지 못하는 사례가 태반인 점은 물론, 총상이나 파편상 등의 중증 외상자가 발생했을 때 병사부터 간부까지 제대로 된 구급조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 사주경계나 통신보안이 엉망이라는 점 등이 단골 지적 케이스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지적은 이른바 “했다 치고, 있다 치고, 된다 치고”로 통칭되는 보여주기식 훈련을 한다는 점과 이런 훈련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돼 지적을 받으면 이를 숨기거나 변명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전 이후 한국군은 실전경험이 거의 없는 군대가 됐다. 이라크 파병을 통해 귀중한 기회를 얻었지만, 전투가 거의 벌어지지 않는 지역을 찾아 들어가 치안 유지만 하면서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작전 지역으로 이동 중 발생한 저항세력과의 교전은 해당 교전에 참여한 특전사 부사관이 외부에 폭로할 때까지 철저하게 은폐됐고, 해당 교전을 겪고 장비와 전술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던 부사관은 중징계를 받고 전역지원서를 내야 했다. 미군과 같이 훈련 상황에서도 부상자가 나오는 ‘실전형 고강도 훈련’은 한국군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그런 훈련을 하다가 부상자가 나오면 지휘관이 책임져야 하고, 그런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면 인권침해라며 사단장·군단장을 ‘대통령실 국민청원’으로 날려버리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국군의 현실이다. 운이 좋아 미군과 연합훈련을 할 기회가 생겨 모의 교전 끝에 연전연패를 해도 우리 군은 교훈을 얻으려 하기보다 숨기고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병사들은 “미군은 장비가 좋아 이길 수 없다”고 변명하고, 간부들은 패했다는 사실 자체를 언급하지 않으며 패배를 통한 학습과 발전을 스스로 거부하기까지 한다.
최근 국방부는 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전투형 강군으로 군의 체질을 바꿔 나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개혁은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전투형 강군 육성’은 우리 군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다. 전투형 강군 육성이라는 과제를 그럴싸한 보고서와 홍보 문구 몇 자로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미군이나 앞서 언급한 MCF들을 초빙해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공개 모의교전과 사후강평을 해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세상 이치다. 전투형 강군 육성이라는 목표가 군의 진심이라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국민 앞에 그 진심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