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악한 이들에게 퍼붓는 시원한 험담

입력
2023.02.19 14:00
25면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욕을 왜 할까? 폭력과 그 순환에 대한 지식에 따르자면, 욕은 자신이 받은 폭력의 에너지를 분출하여 토해내는 하나의 방어 기제다. 분출해 내지 않으면 받은 폭력이 자신의 내부에 타격을 입힌다. 받은 폭력을 되돌려 가하거나 해소하지 못하면 화병에 걸리기도 하고, 위장이나 심장에도 좋지 않다. '가슴 아프다'는 그저 관념적 표현이 아니다. 상처를 받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정말로 심장 부위가 아리다. '속상하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받은 폭력의 에너지를 반드시 밖으로 분출해 내야 속이 산다. 이때 욕은 물리적으로 분출하는 것은 아니라서 상대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 아주 적절하고 용이한 기제가 된다. 그래서 인기가 많다. 욕으로만 쏟아붓는 것이 낫지,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경찰서 가서 해야 할 뒷수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은 해도 좋은가? 목사로서 절대 권장하지는 않지만, 신앙인이든 교양인이든 받은 폭력은 해소하는 것이 좋다. 어릴 적부터 욕을 해오지 않아 어색하긴 하지만, 혼자 운전하다가 입 밖으로 욕이 새어 나온 적이 있다. 영국서 살다가 알게 된 그쪽의 가벼운 욕 하나가 지금도 개념 없이 튀어나온다. 모국어가 아니어서 그런지 "shit"(똥)을 너무 무방비하게 배워버렸다. 공공장소에서 튀어나오면 다들 재수 없게 쳐다봐서 흠이긴 하다. 그래도 한마디 내뱉으면 왠지 속이 풀린다. 그래도 우리가 교양있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내가 직접 험담을 하거나 욕을 내뱉지는 못해도 남이 대신해주면 그야말로 고맙다. 막힌 하수구 뚫듯 속을 뻥 뚫는 욕을 누가 해주면, 자기 입은 더럽히지 않고 큰 효과를 본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친구가 이야기도 들어주고 욕을 맛깔나게 해주면 살맛 난다.

욕을 함부로 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대신 험담을 내뱉어 주신 분이 계시니 바로 예수다. 사람을 위하라는 율법의 본의는 제쳐놓고 형식주의에 빠진 넋 나간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께서 한마디하셨다. "독사의 자식들아!"(마태복음 12:34).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였다. 예수는 그들에게 거침없이 "회칠한 무덤"이라고 독설을 하셨다(23:27).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속에는 썩은 시체가 있다는 뜻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적 권세도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들의 횡포에 당하면서도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대신 예수가 그들의 입이 되어 주셨다.

우리도 뉴스를 볼 때마다 교양을 잃기 직전이 돼버린다. 그래서 공중파에서는 담을 수 없는 평론이 유튜브를 비롯한 미디어를 통해 인기리에 회람된다. 비속어도 섞어가며 우리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험담을 해 주니 속이 시원하다. 자책까지 안 하셔도 된다. 아침에 눈뜨면 보게 되는 정치권 뉴스가 나의 상쾌한 아침에 똥물을 끼얹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 폭력의 에너지가 해소되지 않으면 우리 속이 상하게 된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출을 해야 하지만 교양을 버리기는 곤란하고, 대신 누군가가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쏟아주면 고마운 일이다.

하나님은 원수도 사랑하고 보듬으라고 하셨다. 이 정점에 다다르기에는 한없이 모자란 인생들을 위해 시편은 정치인을 향한 독설을 여러 편에 대신 쏟아부어 주었다. 읽으면서 욕 대신 할렐루야나 아멘을 외치면 된다. "너희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말 정의를 말하느냐? 너희가 공정하게 사람을 재판하느냐? 너희가 마음으로는 불의를 꾸미고, 손으로는 이 땅에서 폭력을 일삼고 있구나. 악한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곁길로 나아갔으며, 거짓말을 하는 자는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빗나갔구나. 하나님, 그들의 이빨을 그 입 안에서 부러뜨려 주십시오. 움직일 때 녹아내리는 달팽이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 달을 채우지 못한 미숙아가 죽어서 나와 햇빛을 못 보는 것같이 되게 해 주십시오!"(시 58편에서).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