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뭉이' 유연석 "반려견 떠나보내면 가슴 미어져" [인터뷰]

입력
2023.02.21 10:24
'멍뭉이' 유연석, 민수 역 맡아 열연
"진짜 주연 배우는 출연 강아지들"

개와 인간의 시계는 다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반려견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일은 강아지와 함께하는 이들의 숙명이다. 배우 유연석은 그 고통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멍뭉이'를 보며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의 빈자리를 떠올렸고 눈물까지 쏟아냈다. 많이 아파했던 유연석의 곁은 구조된 개 리타가 든든하게 지키는 중이다. 유연석을 만난 리타는 조금씩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유연석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영화 '멍뭉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멍뭉이'는 집사 인생 조기 로그아웃 위기에 처한 민수와 인생 자체가 위기인 진국의 모습을 그린다. 두 형제는 사랑하는 반려견 루니의 완벽한 집사를 찾기 위해 면접을 시작한다. 유연석은 민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유연석이 흘린 눈물

유연석에게 '멍뭉이'는 처음부터 끌렸던 작품이다. '멍뭉이' 시나리오가 그의 앞에 놓였을 당시 다른 영화 대본들도 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멍뭉이'라는 가제의 제목을 본 유연석은 '이거 먼저 볼까?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멀티캐스팅 대작, 대단한 예산의 영화에 손이 갈 수도 있었지만 '멍뭉이'를 읽은 후에는 이 작품을 떠나보내기가 어려워졌다. "'멍뭉이'가 주는 메시지와 의미를 느끼고 나니 대본을 돌려보낼 수가 없더라고요.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를 안 하겠다고 말하는 게 강아지들을 거절하는 것과 같은 의미인 듯 느껴졌어요."

유연석은 김준환 감독을 만났을 당시 '이 사람은 진짜구나'라고 생각했다. 강아지들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게 보였단다.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탄생한 작품은 유연석을 울게 만들기까지 했다. 유연석은 '멍뭉이' 시사회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보였는데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나도 놀랐다. 공식 석상에서 울었던 적이 거의 없다. 마음에 남아 있던 영화의 메시지 등으로 순간 확 터져 나온 듯하다"고 이야기했다. 눈물은 영화를 보는 중에도 흘러나왔다. 루니의 털 뭉치를 보며 힘들어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많이 울었단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기들을 떠나보내고 빈자리를 볼 때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유연석의 설명이다.

'멍뭉이'의 진짜 주연 배우들

유연석은 '멍뭉이'에 출연하는 강아지들을 '주연 배우'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분들께서 먼저 찍을 수 있도록 하고 우리들은 남는 시간에 찍는 거다. 그분들께서 우리 영화를 포기하지 않길 바랐다. 집중력이 짧으신 분들이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유연석에겐 이 주연 배우들과의 만남이 곧 힐링이었다. 그는 "힘들다가도 애들이랑 놀아주고 한 번 보고 그러면 너무 좋더라"고 말했다. 촬영 후 오랜만에 만난 루니는 유연석을 알아보고 그에게 고개를 파묻었다. 루니와의 교감은 유연석의 마음에 온기를 전했다.

'멍뭉이'에는 루니의 진심이 담겼다. 유연석은 "작품에 루니가 나랑 교감했던 부분들이 담겼다. 훈련으로 만들어진 표정이 아니다.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찍듯 시간을 들여서 담아냈다"고 말했다. 루니의 호흡은 민수가 눈물 흘릴 때, 그를 품에 안고 있을 때 달라졌다. 유연석은 촬영 중 루니의 숨소리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표정을 실제로 확인하진 못했다. 이후에야 큰 화면으로 루니의 표정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유연석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사진에 담긴 차태현과의 만남

극에서 강아지들만큼이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들은 민수와 진국(차태현)이다. 차태현과 유연석은 2008년 방영된 MBC 드라마 '종합병원2'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유연석이 차태현과 다시 한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감정은 반가움이다. 유연석은 "재밌게 촬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사람 좋은 형이지 않나. 내가 15년 전에 잘 몰라서 당황도, 실수도 많이 했는데 태현이 형이 진짜 선배, 형처럼 많이 가르쳐 주고 이해해 주고 이끌어 줬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지난날은 사진 한 장에 담겼다. 유연석이 '종합병원2' 당시 찍었던 사진은 '멍뭉이'의 소품으로 활용됐다. 그는 "'휴대폰 사진으로 찍어놨다면 영화에서 못 썼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유연석은 실제로 사진 촬영을 좋아한다. 최근 출연한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때도 필름 사진을 찍어 배우들에게 나눠줬다. 이 이야기를 전하던 유연석은 "사진이 몇 년 뒤 또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면서 웃었다.

유연석과 반려견 리타

유연석 반려견 리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리타는 폐쇄된 애린원에서 구조된 개다. 유연석은 리타와 함께 살아가며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유기견에 대한 편견은 없었다. 그는 "유기견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유기견이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른 거다"라고 말했다. 과거 개들이 많은 공간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 리타는 다른 강아지들과 있는 걸 싫어한다. "그게 입양이 안 됐던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게 유연석의 설명이다. 그러나 리타는 유연석을 만나고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털이 빠져 있었지만 따뜻한 손길 속에서 예뻐졌고 강아지 친구도 생겼다. 유연석의 노력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유연석은 대학 때 떠돌던 믹스견을 데려다 키웠다. 그의 어머니는 보호자에게 버림받은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어미도, 형제들도 모두 죽은 상황 속에서 목숨을 건진 강아지였다. 원래 보호자는 살아남은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일이 고통일 듯하다며 파양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유연석은 동물을 위한 고민을 이어갔다. 그 고민의 결과 중 하나인 '멍뭉이'에 기대가 모인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어떤 게 있을지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영화까지 온 듯해요. 물론 봉사 활동을 가서 빗자루질을 하는 것도 좋지만요. 많은 분들이 '멍뭉이'를 보시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작은 변화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멍뭉이'는 다음 달 1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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