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 경주마 복지’ 어디까지 왔나.. 1년 만에 다시 열린 국회 토론회

입력
2023.02.17 09:00

지난해 발생한 ‘퇴역 경주마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제작진이 촬영 과정에서 말을 학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25일 제작진 3명을 동물보호법 위반(동물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제작진은 2021년 11월, 드라마 촬영 과정에서 퇴역 경주마 ‘까미’의 앞다리를 밧줄로 묶게 한 뒤 달리게 해 바닥에 고꾸라지게 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제작진은 촬영 이후 말이 큰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촬영 1주일 뒤, 말은 숨졌습니다. 경찰은 이 점에서 제작진이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고 까미를 방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작진에 대한 처벌은 법정에서 결론이 내려질 겁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제작진만 처벌받고 끝낼 수 없다는 게 동물보호단체들의 입장입니다. 그동안 학대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으며 지내온 퇴역 경주마들의 복지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동물보호단체들과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2월,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토론회 개최 1년 만인 지난 13일, 국회에서 퇴역 경주마 복지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다시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규모도 더 커졌습니다. 동물복지국회포럼(공동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과 위성곤(더불어민주당), 윤미향(무소속) 의원이 주최에 참여했고, 한국마사회 뿐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마주단체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공식 토론자는 아니었지만, 제주도 관계자 역시 토론회에 참석해 의견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회의 참석자들은 퇴역 경주마 복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모두 공감을 표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퇴역 경주마 복지 체계는 얼마나 잘 마련됐을까요?

제주지역 동물보호단체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의 김란영 대표는 발제를 통해 지난해 통계를 공개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간 퇴역한 경주마 1,374마리 중 421마리(30.6%)가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는 2021년(43.9%), 2020년(49.8%)보다는 낮아진 폐사율입니다.

다만 김 대표는 폐사율이 줄어든 것보다는 다른 곳에서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그는 “폐사 비율이 높은데도 그 원인이 불투명하다”며 “원인 파악이 개선을 위한 첫걸음 아니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현행 퇴역 경주마의 이력 관리가 부실한 점을 짚으면서 “마주들이 자율적으로 데이터를 등록하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져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말 이력제 관리를 경주마를 정기 진료하는 수의사에게 맡기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현행 이력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이미 대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농식품부 이정삼 축산정책과장은 지난해 토론회에서 “말 산업 종사자 대상 교육을 실시하고, 이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동그람이는 올해 토론에도 참석한 이 과장에게 이 방안의 진행 상황을 물었습니다. 그는 동그람이의 질문에 “지난 한 해 말 산업 종사자 678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고, 교육 전문 인력도 1명 양성했다”며 “올해는 교육 전문 인력을 추가로 3명 더 양성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법제화에 대해서는 올해 3월 중 퇴역 경주마 현황 전수조사가 나온 뒤 논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주마 산업의 중심에 있는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토론에서 ‘말 복지 개선 계획’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계획 중 ‘말복지센터 설립’과 ‘말 복지기금 도입’은 실현됐습니다. 특히 말 복지기금의 경우 마주와 마사회가 올해부터 연간 20억씩 5년간 100억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용학 서울마주협회장은 이에 대해 “사실 마주들이 말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지 불과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2020년 코로나19 이후로 타격이 컸지만, 퇴역 경주마 복지에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기금 출연에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는 전체 경마 상금의 약 1% 수준입니다. 지난해부터 동물단체 관계자들은 경마 상금의 3% 정도는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마주들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경마관련 세제가 해외에 비해 높은 국내에서는 마주들의 부담이 더 크다는 겁니다.

마사회가 토론회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경마 관련 세율은 16% 정도입니다. 홍콩(12%), 일본(10%)보다도 높고, 영국(4%)에 비하면 4배 수준이라는 게 마사회의 주장입니다. 세금을 많이 거둬가는 만큼 마주들은 정부에서 거둬간 세금에서도 복지기금을 마련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보인 겁니다.

마사회 김진갑 말복지센터장은 동물단체와 말 산업 관계자들의 엇갈리는 주장에 대해 “(말 복지를 요구하는) 동물단체들과의 소통 부족을 절실하게 느낀다”면서 “올해부터는 현실성 있는 말 복지 구현 방안을 마련하도록 적극 소통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마사회의 계획이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김정현 대한재활승마협회 이사는 한국마사회가 지난해 발표한 ‘비전 2037’을 언급하며 “말의 복지 문제에 대해 모호하고 애매한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현역 및 퇴역 경주마의 생존과 복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관리 감독기관인 농식품부의 역할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토론 직후 동그람이와 만나 “실제로 말 복지 계획이 실현되려면 결국 정부, 농식품부가 강하게 이끌어야 한다”며 “오늘 토론회를 통해 정부가 의지를 어느 정도 보인 듯한데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의원들도 법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윤미향 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친생명 정책에 대한 요구가 높은 걸 느낀다”며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가도록 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퇴역 경주마 관리를 동물보호법에 명시하는 개정안을 추진 중인 위성곤 의원 역시 “아직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복지 개선 방안이 수립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토론회를 발판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입법을 실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까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러나 퇴역 경주마 복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토론회를 연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8월, 충남 부여의 한 페목장에서 퇴역 경주마 2마리가 구조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조희경 대표는 이 사례를 언급하며 “구조한 말들의 마번을 검색해 보니 전남 구례군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말이 실제로는 부여에서 발견됐다”며 “이력 체계를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라며 말 산업 종사자들과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대책 마련을 호소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