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조에 회계 장부를 제대로 비치·보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조사 대상 중 36.7%만 요구 자료를 모두 제출했고, 절반에 가까운 47%는 표지만 내는 등 일부 자료만 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2주간의 시정 기간을 부여한 뒤에도 이에 응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1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점검 대상인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의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327곳 중 120곳(36.7%)만 정부 요구에 따라 자료를 제출했다. 자료를 아예 제출하지 않은 곳은 54곳(16.5%)이었고, 자율점검결과서와 서류의 표지만 제출한 곳(일부 제출)은 153곳(46.8%)이었다.
상급단체별 제출률은 △전국노총·대한노총·미가맹 41.6%(37개) △한국노총 38.7%(67개) △민주노총 24.6%(16개) 순으로 높았다. 조직형태별로는 △기업별노조 46.2%(70개) △산별노조 및 지역·업종별 노조 등 초기업 노조 30.4%(28개) △연맹·총연맹 등 연합단체 20.3%(13개) 순이었다. 조직대상별로는 △공무원·교원 노조 48.1%(38개) △일반 노동조합 33.1%(82개)였다.
앞서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14조에 따라 노조가 비치·보존 의무 대상 서류를 갖추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한 달간 자율점검하도록 한 뒤 이달 1일부터 자율점검결과서와 증빙자료를 관할 행정관청에 보고하라고 요구했었다. 대상 서류는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의 성명·주소록 △회의록 및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최근 3년 치로, 항목마다 표지와 내지를 1장씩 제출하도록 했다.
46.8%의 노조가 '일부 제출'만 한 것은 양대노총의 지침 때문이다. 양대노총은 소속 노조에 "노조원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자율점검결과서와 증빙자료를 제출하되, 내지는 제출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정부의 자료제출 요구를 노조의 자율성 침해라고 본 것이다. 양대노총 관계자는 "노조법상 자료제출을 요구할 때는 사유와 필요한 사항을 서면으로 요구해야 하며, 행정관청이 필요하다 인정한 경우에만 보고 의무가 있다"면서 "(이번 요구는) 월권이고 위법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노조가 불신을 자초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용부는 "정부의 정당한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하기 위해 양대노총이 대응지침을 배포해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노조 회계 투명성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회계 투명성과 관련된 현행 법 조항을 위반해 오히려 '깜깜이 회계'라는 불신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업별 노조보다 규모가 큰 초기업 노조, 연합단체가 의무를 지키지 않는 비율이 높았다"며 "회계 투명성 관련 법 준수 의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일부 제출한 207개 노조에 대해 2주간의 시정기간을 준다. 만약 이 기간 동안 자료를 다시 제출하지 않거나, 소명하지 않으면 과태료(500만 원 이하) 부과 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다. 이르면 다음 달 15일쯤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자료 제출이나 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장조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노조가 현장조사를 거부·방해·기피하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의무 이행은 조합원이 조합 운영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위한 기본 전제로 노조의 민주성, 자주성과 직결된다"면서 "노조가 스스로 시정하게끔 독려하고, 점검 결과 발견된 법 위반사항에 대해 후속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