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맡긴다더니 조삼모사 공공요금 억제 꺼내든 정부

입력
2023.02.16 15:00
20면
포퓰리즘 비판하던 전 정부 정책 따라
상반기 공공요금 인상 최대한 동결
하반기로 미뤘지만 현실화 미지수



“내년에 상당 폭의 가스·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추경호 부총리·지난해 12월 21일)


“서민 부담 완화를 위해 요금 인상 속도를 완만하게 늦추겠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달 15일)

공공요금 정상화를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 경제수장의 입장이 두 달도 안 돼 크게 바뀌었다. 이전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던 이번 정부 역시 인위적인 억누르기를 통한 물가 다잡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누적된 부채 등 요금 인상 요인이 없어지는 건 아니어서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장주의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관치’에 손을 댄 이유는 정부 통제 아래 있는 공공요금 인상이 가뜩이나 고공행진 중인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기·가스·수도요금이 지난해보다 28.3% 급등하면서 지난달 물가상승률(5.2%)은 다시 상승 전환했다. 물가 상승폭이 전월보다 확대된 건 지난해 9월 5.6%에서 10월 5.7%로 오른 이후 3개월 만이다.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상반기 내 최대한 동결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요금을 올리지 않거나, 높여도 소폭 조정하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

여기엔 하반기가 되면 공공요금을 인상해도 물가 충격이 크지 않을 거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물가상승률이 상반기 안에 4%대로 내려간 뒤 하반기엔 3%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가 되면 물가상승률이 꺾여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을 흡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억누른 공공요금이 나중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의 ‘공공요금 폭탄 돌리기’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이번 난방비 폭탄만 해도 문재인 정부가 눌러놨던 가스요금이 원인이 됐다.

전기요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올해 1분기 인상폭(㎾h당 13.1원)은 지난해 전체 요금인상분의 68%에 달한다. 그러나 한전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정한 올해 요금 인상 수준(51.6원)과 비교하면 25%에 불과하다. 향후 상당 폭의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단 뜻이다.

경기라도 좋아지면 하반기에 공공요금을 올려도 충격이 덜하겠지만, 이 역시 불투명하단 점이 걸림돌이다. 수출은 내리막길을 걷고, 내수 역시 부진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9%로 높이면서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오히려 하향 조정(2.0→1.7%)했다.

게다가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표심에 반하는 공공요금 정상화 정책을 밀고 나가는 게 쉽지 않을 거란 관측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요금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하반기에 현실화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공공요금 동결 조치로 당장의 국민 부담은 줄겠지만 결과적으로 언젠간 갚아야 할 공기업 부채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 변태섭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