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싸고 좋은 집은 없다

입력
2023.02.16 19:00
25면

편집자주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공간들과 건축물의 소개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필자의 시선에 담아 소개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에서 유발되는 주요 이슈들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해 우리 삶과 시대의 의미도 함께 되새겨 본다.



주택짓기는 건축가 경력의 모든 것
설계도 정확하면 실패 가능성 적어
꼼꼼한 설계 시공이 좋은 집 조건


설계하기 가장 쉬운 건물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전자도 주택, 후자도 주택이라고 말한다. 건축가의 경력은 주택으로 시작해 주택으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고 시작할 수 있지만 제대로 잘 만들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 집의 설계이다. 유명한 건축가 필립 존슨(1906~2005)도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집을 설계하는 것은 초고층 빌딩을 하는 것보다 더 고생스럽다." 주택 설계는 규모는 작지만, 건축주에 따라 그 요구가 매우 다양하고 생각이 끊임없이 변경되기도 하며, 설계 시 고려해야 할 것들도 의외로 많아서 한 말이 아닌가 한다.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할 때 코끼리와 모기 중 어느 쪽이 만들기 까다로웠을까? 실눈을 뜨고 집중해야 자세히 보이는 모기는 모든 기관이 단 1㎜의 오차도 없이 그 작은 규모에 들어가도록 치밀한 설계가 이뤄진 것이 명백하다. 기성품과 달리 고유한 장소에 건축법의 제약 속 특정한 집주인의 요구를 수용하는 설계는 여러 대안 검토에서 출발해 소거해 가는 방식으로 최적의 계획을 다듬는다. 이 계획을 토대로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조립할지 상세한 도면들을 열심히 그리면 때로는 100장이 넘는다. 설계도가 정확하고 상세할수록 지을 때 발생하는 문제도 줄어든다. 설계를 잘 마무리해도 간혹 실력 없는 시공자로 인해 실패하지만, 대충 찍어내듯 작성된 설계도로 좋은 집을 만들기는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의 미국 시카고의 판스워스 하우스(사진)는 현대건축의 아이콘에 해당하는 주택이다. 1954년 저명한 의학자 판스워스 여사를 위한 주말주택으로 저 푸른 초원 위에 자리하고 있다. 집이 들어설 위치를 정하는 것에서 설계는 시작되었다. 사생활이 침해받지 않는 외딴곳이었고 주변 전망이 지극히 아름다워서 어디를 주요 향으로 결정할지 어려웠으므로 전체가 유리로 된 집을 제안했다. 유리집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직사광선을 가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줄 기존 울창한 단풍나무들의 위치까지 고려해 배치를 정하였다. 내부는 침실과 거실이 벽으로 구획 없이 중심의 'ㅁ'자 화장실과 부엌을 따라 느슨하게 연속되어 있다. 당시 새로운 재료였던 철과 유리를 아름답게 조합해 사방이 열린 추상적인 구성은 고대 신전의 현대적 재현이었다. 남겨진 자료에 따르면 완벽한 품질 구현을 위해 설계팀은 2년 동안 5,884시간의 설계 작업과 100회 이상의 현장 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60여 평의 단층 주택에 들인 노력과 정성은 보통이 아니다.

집 한번 지으면 골병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로 다음 이유로 그런 원하지 않는 고초를 겪는다. 그는 아마 굉장히 오래전 집을 지어본 지인이 평당 얼마에 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 일단 싼 가격을 부르는 시공업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시공업자는 절대 손해 보는 공사는 하지 않는다. 나중에 각종 추가 공사, 별도 공사, 날림 공사 그리고 공사 중지로 진행된다. 때로는 친척이나 지인 중에 시공하는 사람이 있어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맡긴다. 이 경우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고 하는데 알아서 잘해 주겠지와 이 정도면 괜찮겠지가 어느 시점 충돌하여 참극을 빚기도 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어느 광고의 카피가 생각난다. 집은 가족의 삶의 가치를 담는 소우주이자 자아의 연장이다. 좋은 집의 필수 조건을 든다면 집주인이 충분한 시간 동안 집에 대해 생각하고 제대로 된 설계가 이뤄졌으며, 성실한 시공자가 정성을 들여 꼼꼼히 지은 집일 것이다. 살면서 간혹 비싸고 안 좋은 것도 보지만 평생 오래 잘 쓰기에 싸고 좋은 것은 거의 드물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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