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라는 개념이 부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발간된 두 차례의 백서에서는 사라졌던 표현이다. '국무위원장'으로 호칭하던 북한 김정은을 이름 그대로 '김정은'으로 표현하며 잇단 핵·미사일 도발과 9·19 군사합의 위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국방부는 16일 북한 위협의 실체와 엄중함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기술한 ‘2022 국방백서’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1967년 발간 이후 25번째로, 백서는 통상 2년마다 공개한다.
백서는 “북한은 2022년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우리를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였으며 핵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군사적 위협을 가해오고 있다"면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못 박았다. 이처럼 북한 정권이나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 국방백서 이후 6년 만이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북한의 대남 전략 △우리를 적으로 규정한 사례 △지속적인 핵전력 고도화 △군사적 위협과 도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펴낸 2018·2020 국방백서에서는 북한과의 화해무드를 반영해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만 했을 뿐 북한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이 같은 '(주)적' 개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줄곧 논란의 대상이었다.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 이후 이듬해 발간한 국방백서에 처음으로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해 2000년까지 유지했다.
하지만 이후 남북 화해 기류를 반영해 2004 백서에서 ‘적’ 대신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2008년에는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고 수위를 낮췄다. 그러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그해 백서에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란 표현이 다시 나타나 박근혜 정권까지 지속됐다.
이처럼 북한 정권을 적으로 다시 규정하면서 2020 국방백서에 담겼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호칭도 삭제됐다. 2022 국방백서는 김 위원장을 ‘김정은’이라고만 기술하면서 “김정은은 국무위원장, 최고사령관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하면서 북한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0 국방백서에서 미국과 북한을 묶어 부를 때 사용하던 ‘북미’라는 표현도 ‘미북’으로 바꿨다. 같은 민족인 북한보다 혈맹 미국이 먼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해 통일부가 공개한 윤 대통령의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 설명자료를 보면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미북관계’로 지칭하고 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와 체결한 ‘9·19 군사합의’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방백서는 "2020년까지 북한의 주요 위반은 2회였지만 작년 한 해만 무려 15회(일)에 걸쳐 위반했다"며 “해상완충구역 내 포사격 및 NLL(북방한계선) 이남으로 미사일 발사, 무인기 침범 등 9·19 군사합의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조치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20 국방백서에서 북한이 전반적으로 9·19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아울러 북한이 거듭해 탄도미사일 도발을 자행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북한은 지난해 1월 5일부터 12월 31일까지 34일에 걸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2022 국방백서 전문은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열람과 다운로드할 수 있고, 3월 중에 최종 인쇄된 책자가 정부기관, 국회, 연구소, 도서관 등에 배포될 예정이다. 국방부는 또 국방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고자 영문본과 다국어 요약본(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으로 제작해 올해 상반기 중 발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