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매주 두 차례 원내대책회의, 정책조정회의 같은 이름이 붙은 정책 관련 회의를 연다.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정치 현안을 다루는 최고위원회의와 달리, 예산과 입법 등 정책 이슈를 주로 취급한다. 주요 참석자는 그래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등 당의 입법·정책 책임자들이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회의 앞부분은 언론에 공개된다.
최고위원회의 공개 발언에선 상대 진영을 견제하는 험한 말이 나올 때가 더러 있다. 하지만 경제와 민생 위주의 정책 회의는 비교적 점잖았다. 그런데 요즘 양당의 정책 회의조차도 윤석열 대통령 일가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상대편을 겨냥한 험담으로 채워질 때가 많다.
이런 식이다. 10일 국민의힘 현안점검회의에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소가 초읽기에 들어간 이재명 대표 범죄를 비호하겠다고 국정의 발목을 꺾는 민주당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고 분노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이재명 대표는 자기 주변의 세상을 뜬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조차 전혀 없어 보인다. 피해자 코스프레만 한다”며 다른 당 대표 비난을 이어갔다.
14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 박홍근 원내대표는 첫마디부터 김건희 여사였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남편과 사위로 둔 모녀는 검찰이 입혀준 치외법권 방탄복을 껴입고 공소시효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비틀었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난방비 문제를 꺼내나 싶더니 곧바로 임기가 1년도 안 지난 윤석열 대통령의 “레임덕” 가능성을 언급했다.
양당이 거칠게 맞부딪치며 전선을 넓히는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전방위 검찰 수사, 윤 대통령 최측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 등이 배경이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그래도 괜찮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양당이 서로만 바라봐도 될 만큼 세상이 편안하지 않다. 고물가와 고금리 같은 단기 과제, 기술 변화와 인구 감소, 탄소중립 대비 같은 중장기 과제가 정치권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에 양당이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 회의조차 정치 공세로 물들이면 문제 해결에 쏟을 에너지는 분산될 수밖에 없다.
실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서로 상대에게 기대는 적대적 공생관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부족한 현안 파악과 이슈 발굴, 문제 해결 능력 탓에 회의 때마다 공개 발언을 준비하기가 벅찬데 거친 말로 쉽게 분량을 채울 수 있게 도와주는 관계 말이다.
국회와 정당 운영에는 국가 예산이 많이 든다. 국회의원 세비와 의원 1명당 9명씩 배속되는 보좌진 월급만이 아니다. 양당 소속이지만 월급은 국회 사무처가 주는 정책연구위원 숫자만 민주당 49명, 국민의힘 28명에 이른다. 양당은 매년 경상보조금 명목으로 각각 200억 원 넘는 나랏돈을 받는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던 지난해 양당은 선거보조금으로 각각 400억 원 넘게 받았다. 15% 이상 득표한 후보가 받는 선거비용 보전과는 별개의 국고 지원이다.
국민 삶 개선을 위한 정책 주도권을 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치라면, 정책 회의는 투입된 비용에 걸맞은 산출물을 보여줘야 하는 자리다. 대국민 서비스와 거리가 있는 험담으로 채우는 건 납세자 배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