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점주들은 왜 전기충격기·가스총까지 갖춰 놓아야 했나..."불투명 시트지 때문에 범죄 걱정 커져"

입력
2023.02.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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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흡연율 감소 위해 시트지 붙였지만
점주들 "실효성 없고 야간 범죄 위험↑"
보건복지부 "광고물 제거 등 대안 있어"


"편의점에 불투명 시트지 붙인 뒤 강력범죄 걱정이 많죠. 야근 때 쓸 무기를 구할까 고민 중입니다."


인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최근 일어난 편의점 강도살인 사건을 떠올리며 답답해했다. 심야시간 강력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은 점점 커져가는데, 시트지 때문에 매장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편의점 범죄 건수는 2019년 1만4,355건, 2020년 1만4,697건, 2021년 1만5,489건으로 늘고 있다.

8일 일어난 편의점 강도살인 사건을 두고 편의점 점주들은 시트지를 당장 없애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가 청소년 흡연율을 줄이기 위해 편의점 유리창에 붙이도록 한 시트지가 시야를 가려 강력 범죄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안이 안 보이는 편의점…범죄의 대상 되기 쉬워"


편의점 시트지는 영업소 바깥으로 담배 광고가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것이다. 2011년 도입돼 10년 넘게 시행되지 않다 2021년 7월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보건복지부가 단속을 시작하면서 업주들이 붙이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담배 광고가 보이면 해당 편의점 점주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편의점 점주들은 "야간 근무자의 안전만 위협하는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범죄 예방 설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편의점은 건물 정면에 가로막는 것이 없어야 하고 시야가 확보돼야 하는데 시트지 때문에 안전장치들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이다. A씨는 "예전에는 길을 가다 편의점 안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신고를 할 수 있었다"라며 "지금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어렵다"고 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미리 막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적 감시가 중요하다"며 "진열대도 너무 높지 않게 하고 입구에 물건을 많이 쌓아 놓지 않게 해야 잠재적 범죄자가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점주들은 호신용 도구까지 준비하고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의 일부 점주들은 목검이나 가스총, 골프채, 전기충격기 등을 갖춰 놓았다. 점주 B씨는 "다른 근무자가 도구를 쓰다 자칫 더 위험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일부 점주는 야간 근무자에게 범죄가 일어나면 나서지 말고 피하라는 당부까지 했다.



'광고물 제거하면 돼' VS '비현실적인 대안'


시트지가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는 데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2021년 8~11월 질병관리청이 중고교생 6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제17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한 달 동안 하루 이상 담배를 피운 청소년은 4.5%로 전년(4.4%)보다 늘었다. 한 달 동안 편의점 등에서 담배를 살 수 있었던 비율인 '담배 구매 용이성'은 74.8%로 전년보다 7.8% 늘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편광필름 부착, 담배 광고물 크기 및 위치 조정, 광고물 제거 등 다양한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업계에 안내하고 있다"며 "범죄 노출 걱정을 줄일 수 있게 업계와 소통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정부가 말한 대안도 현장에서는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점주들은 입을 모은다. 각도에 따라 광고물이 안 보이게 만드는 편광필름은 담배회사에서 광고 계약 조건 위반으로 편의점에 광고비를 줄이거나 줄 수 없다고 반발해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광고물 위치를 바꾸려면 계산대 등 구조를 바꿔야 해 비용도 더 든다. 주요 소득원인 담배 광고비를 포기하면서 광고물을 없애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홍성길 한국편의점주협의회 정책국장은 "합법적 광고인데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하라는 게 말이 되나"라며 "현실과 동떨어지는 법을 개정하든지 명확한 단속 기준을 세워 대안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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