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난방비 폭탄 논란이 시작된 지난달 중순부터 지금까지 한 달 동안 난방비 지원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무더기로 발의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난 민심을 국회가 적극적으로 반영한 셈이지만 몇 년 전 발의된 법안과 겹치거나 비용을 따지기 어려운 '보여주기식 법안'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최근 한 달 동안 발의된 난방비 관련법 개정안은 총 7개다. 에너지이용권(에너지바우처) 대상자를 기초생활수급자 생계‧의료급여 수급자에서 주거‧교육급여 수급자까지 확대한 에너지법 일부 개정법률안(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5인)이 1월 10일 발의된 데 이어 '난방비 지원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법안이 2월 8일까지 다섯 건 접수됐다.
대통령령으로 정한 전기요금 부담금(전체의 3.7%)의 상한선을 낮춰 요금을 더 낮추자는 법안(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석유‧가스기업에서 횡재세를 거둬 소외계층 에너지 지원 사업에 쓰자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각각 1월 26일, 17일에 제출됐다.
최근 한 달 동안 등장한 난방비 관련법이 21대 국회가 열린 2년 7개월 동안 통과된 법안 수(4개)보다 많은 셈이다. 그 네 건 중 세 건은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사채 발행 한도를 높이는 법안과 3년마다 에너지 지원 사각지대 실태를 조사하는 정부안이었다.
문제는 최근 한 달 새 발의된 법안의 내용이 비슷한 데다 일부 법안은 당장 시행하기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횡재세로 소외계층 난방비를 지원하자는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두고 국회예산처는 "지금 시점에서 합리적으로 추계하기 곤란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①초과소득에 대한 법인세액(횡재세)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해 얼마를 거둬들일지 알 수 없고 ②'에너지 복지사업의 범위와 지원 대상 등을 확정하기 곤란'해 재원이 얼마나 들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다.
에너지이용권 지원 대상을 저소득층에서 '생활이 어렵거나 급격한 가격 상승 등을 사유로 에너지 이용에 소외되기 쉬운 계층'으로 넓힌 에너지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모호하다. 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승원 의원실 관계자는 "시급한 문제에 정부에 재량권을 주는 게 중요해 에너지 소외계층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난방비 문제가 나올 때마다 지원 대상‧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 수 있다.
사실 난방비 지원 법안은 2021년 3월 발의됐지만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못한 채 계류돼있다. 이용빈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에는 가스요금 감면 대상을 기초연금수급자,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으로 분명히 밝혔고,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직권으로 신청할 수 있게 했다. 같은 해 5월 상임위 소위에 회부됐지만 당시 회의록에는 이 법안을 꺼낸 의원은 아무도 없었고 2년째 상임위에 머물고 있다.
에너지 지원 사각지대 문제를 지적해 온 시민단체들조차 난방비 관련 국회 논의가 졸속이 되지 않을까 우려를 내놓고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입법을 많이 하는 게 좋은 건 아니다"라며 "적정성 평가가 안 된 법이 마구 나오면 엄청난 왜곡이 작용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법 개정 없이 지금도 난방비 지원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난방비 지원 개정안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산자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 소상공인 전기료‧가스요금 경감책을 의원들이 앞다퉈 발의했는데 결국 정부가 추가 경정 예산을 쓰기로 하면서 관련 법안이 모두 국회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일보가 최근 한 달 안에 난방비 지원 관련법을 발의한 한 의원실에 '이미 나온 법과 겹친다'고 지적하자 "그것까지는 모르겠다"는 대답도 돌아왔다.